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놓고 야권이 분열하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 하나는 야권 내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면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어야 한다. 한쪽은 반대하고 다른 한쪽은 찬성해야만 분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박 전 대통령 사면 때문에 현 정권에 감사하는 태도를 보이는 세력이 존재해야 분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박 전 대통령의 사면에 감읍한 나머지 현 정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거두거나 현 정권을 지지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야 야권 분열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라도 현재 관측되는 것은 없다.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놓고 야권 내에 반대하는 측은 전혀 없고, 현 정권에 대해 고맙다고 생각하는 측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야권 일각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사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박 전 대통령만 사면했다는 점을 들어, “갈라치기 사면”이라는 비난을 하고 있지만, 이런 주장이 야권 내의 분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마저 사면해야 한다는 것이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단행하지 않았으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이 야권의 분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분열의 조짐은 여권에서 관측되고 있다. 여권 일부는 박 전 대통령이 사과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면을 단행한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대로 친문 성향 정치인 상당수는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친문과 반문의 대결 구도를 다시금 재현시킬 수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사면과 관련해 이재명 후보와 어느 정도 사전 교감이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현재까지 이재명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사면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청와대 측에서 나온 말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측은, 박 전 대통령의 사면 시기를 고민할 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하나는 이번 성탄절 때 사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3월 대선이 끝난 이후 당선인이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하는 형식으로 사면 복권을 단행하는 시나리오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단행하면서, 청와대가 차기 정권을 의식했다는 점이다. 즉,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복권과 차기 정권의 연관성을 염두에 뒀다는 것인데, 만일 그렇다면 현재 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후보와도 상의하고, 그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의 언급처럼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면, 이는 대선 후보와 현 정권 사이에 또 하나의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물론 사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재명 후보는 사전에 몰랐던 것으로 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여권 핵심 지지층을 달래기 위해 일부 여권 인사들이 사면을 비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일반 유권자들에게 여권이 분열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인상을 주는 것은 지지율 상승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국 사면 정국은 여당 후보의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면 문제 때문에 여야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할 것 같지도 않다. 박 전 대통령의 사면으로, 새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윤석열 후보 지지를 철회하는 보수 유권자들도 많을 것 같지 않고, 사면을 단행한 현 정권에 실망한 진보 유권자들이 이 후보 지지를 철회할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도 표심인데, 이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