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건설현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준공을 앞둔 지하 2층, 지상 4층 창고가 새카맣게 타면서 무려 38명이 목숨을 잃었고 10명이 다쳤다. 코로나 사태에 얽매여 있다가 모처럼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들뜬 사회 분위기에서 전해진 안타까운 소식이다.
더구나 이번 사고는 2008년 그 근처에서 발생한 물류창고 화재의 판박이라고 한다. ‘후진국형 인재(人災)’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이유다. 그때도 지하 1층에서 용접 불티가 가연성 자재로 옮겨붙은 게 원인이었고, 이번에도 지하 2층에서 가연성 재료인 우레탄 작업 도중 불꽃이 튀면서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덮친 것으로 드러났다. 한마디로 안전 불감증이 빚은 참사다.
역대 정부마다 ‘국민 안전’을 강조해 왔지만 대형사고는 여전하다. 현 정부 들어서도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뒤이어서는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4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로 인해 6만 곳에 이르는 전국 다중이용시설의 안전을 점검했으나 이번 사고로 헛심만 쓴 꼴이 됐다.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 책임자들이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현장까지 달려가는 등 부산을 떨지만 달라진 건 거의 없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사고에 대해 “과거 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며 “유사한 사고가 반복돼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어제는 ‘이웃이 아프면 나도 아픕니다’란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유감 표명으로는 부족하다. 국정을 책임진 입장에서 통렬한 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책을 내놓아야만 한다. 그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지에 대해서도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제야 민간 전문가들이 포함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책을 세우겠다는 방안이다. 그렇다면 여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야말로 탁상행정이 아니라 가연성 자재 사용금지, 환기·소화시설 의무화, 화재감시인 배치 등 현장 상황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관련자 엄벌은 물론이고 안전수칙을 안 지켜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