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생위에 우리나라 유전자분석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생위가 산업계 관계자 한 명 없이 ‘그들만의 리그’를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병원 출신이면서 산업계에서도 활동하는 유전자분야 전문가를 포함한 포괄적인 구성이 이뤄져야 합니다.”(B유전자분석업체 대표)
5일 국내 유전자분석업체 대표들은 지난달 29일 열린 대통령 소속 국생위에서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검사’(DTC) 규제 완화 방안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키로 한 데 대해 이같이 밝혔다. DTC 규제 완화 방안은 유전자분석 업계에서 2년 이상 논의돼온 내용이다.
DTC는 병원 등 의료기관이 아닌, 민간기업이 소비자로부터 직접 의뢰를 받아 유전자검사를 시행하는 서비스다. 이와 관련 지난 2013년 안젤리나 졸리가 자신이 유방암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유전자검사를 통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파악, 유방 조직을 사전에 제거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유전자분석은 암이나 희귀질환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아내거나, 개인별 유전적 특성을 확인해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등에 활용한다. 술을 마시면 곧바로 얼굴이 빨개지거나, 커피를 한잔만 마셔도 잠을 못자는 등의 사례가 모두 유전적 변이에 따른 것이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민간기업에서 유전자검사를 받는 것이 자유롭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질병 진단의 경우 반드시 의료기관을 통해야만 한다. 다만 지난 2016년 6월 질병과 관계없는 분야에 한해 민간기업이 유전자검사를 시행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용, 국내에서도 유전자분석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것이 DTC 서비스다.
그러나 DTC를 할 수 있는 대상 항목을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 △피부 노화 △모발 굵기 등 12가지로 한정, 서비스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치매·파킨슨병 등 질병예측성 검사와 개인특성 검사 등을 허용하는 미국·영국·일본 등에 비해 가능한 서비스 범위가 지나치게 좁기 때문. 당초 연간 1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유전자검사산업 규모는 제한된 항목으로 인해 현재 연간 100억원 이하에 머물고 있다고 업계는 하소연한다.
이에 정부는 지난 4월 공청회와 유전체기업협의회 등에서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DTC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이다. 규제 완화를 통해 유전자검사 결과를 설명하는 유전상담사, 유전자분석 데이터를 관리하는 담당자 등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의를 통해 보건복지부 산하 ‘DTC 유전자검사 제도개선 민관협의체’는 유전자검사 인증을 받은 기업에 대해 검사 가능 항목을 늘리자는 방안을 의결했다. 미국 유전자 검사기관 인증제도(CLIA)와 같이 정부가 인력·장비·시설 등을 검증할 경우 기존 검사 항목에 질병 예방 검사와 건강증진에 도움이 되는 ‘웰니스’(신체·정신·사회적 건강) 부문을 확대해주는 내용이다. 인증을 받은 기업은 최대 150여 항목의 유전자검사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국생위에서 이 같은 안건을 폐기하면서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국생위는 첨단의생명과학연구가 윤리성과 안전성, 과학적 타당성 기반 위에서 연구하고 적용될 수 있도록 정책 수립 등을 심의하는 기관이다. 이에 대해 한 유전자분석업체 대표는 “질병에 대한 분석은 어렵다고 해도 웰니스나 치매 예방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허용될 수 있는 영역”이라며 “국생위 구성이 의료·과학·윤리계 등으로만 구성돼 유전자분석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유전자분석업체 대표는 “국생위가 지난 6월 구성되다 보니 이번 현안에 대해 파악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결정하는 데 부담을 느낀 것 같다”며 “더 민감하다고 볼 수 있는 유전자 잔여배아 치료법 연구 등 문제와 함께 안건에 올라가다보니 도매급으로 DTC 규제 완화도 통과하지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국생위 구성 대부분이 교수고 이미 기득권이기에 사회발전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책임감도 없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한편, 글로벌 DTC 시장은 연간 25% 이상 성장, 오는 2022년에는 4000억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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