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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에 승부건 청춘들]②연차 낮아도 핵심업무…또래와 비교 못할 경험

박경훈 기자I 2018.04.20 00:30:01

해외대학 출신, 국내 중기 재직자 4인 인터뷰
작은 부품이 아닌 능동·주도적 업무 수행할 수 있어
부모님 세대 설득…어떤, 왜 이 회사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매출로만 재단, '일할만한 중기' 가리기 어려워

왼쪽부터 이무훈 한샘 사원, 정아영 에스티유니타스 크레이티브 디렉터, 김영준 맵퍼스 매니저, 김대근 웰크론강원 매니저가 대화 중이다. (사진=노진환 기자)
[이데일리 박경훈 기자] “대기업에서 일했으면 ‘작은 부품’밖에 안됐겠죠. 하지만 이곳에서는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어 만족합니다.”(에스티유니타스에서 크레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는 정아영씨)

18일 서울 중구 이데일리 본사에서 만난 ‘유학파 청년 4인방’은 대기업·공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중소·중견기업(이하 중기)에 승부를 건 공통적인 이유로 ‘경험’을 들었다. 미국과 중국, 호주 등 다양한 국가, 다른 대학을 졸업한 이들이 고국으로 복귀한 이유는 다양했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대기업과 공기업 등을 차치하고 중기를 택한 이유는 비슷했다. 이들은 “경험을 비롯해 ‘가능성’·‘도전’·‘문화’ 등 단어는 대기업에 입사해서는 결코 얻기 어려운 요소”라고 입을 모았다.

낮은 연차임에도 핵심업무 수행

뉴욕주립대 경제학과를 2016년 졸업하고 지난해 1월 웰크론강원(114190) 해외영업팀에 입사한 김대근(28)씨는 2년 차 직장인이지만 이미 해외 현장에서 거래처 미팅을 주도하고 있다. 웰크론강원은 엔지니어링 플랜트 기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해외 업무가 잦다. 입사 후 그가 다녀간 국가만 해도 일본·대만·카자흐스탄·이란 등 총 5개국이다. 그는 “삼성·현대 등 대기업 계열 엔지니어링 업체 역시 해외 경험을 쌓을 수 있지만, 입사 초기부터 직접 거래처와 기술 미팅을 주도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또래 친구들과 비교할 수 없는 큰 경험을 쌓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7월 베이징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해 12월 한샘(009240)에 입사한 이무훈(29)씨 역시 마찬가지다. 홈쇼핑사업부에서 롯데홈쇼핑·NS홈쇼핑을 담당하는 그는 사원임에도 불구하고 거래처 부장급 직원을 상대한다. 그는 “홈쇼핑에서 일하는 학교 동기들을 만나면 그들은 단지 부서의 한 직원에 불과하다”며 “현재 해당 홈쇼핑 관련 업무를 거의 총괄한다”며 업무의 무게감을 말했다.

시드니공과대 컴퓨터정보학과를 2014년 졸업하고 지난해 5월부터 맵퍼스 콘텐츠기획센터 연구원으로 근무 중인 김영준(31)씨는 특화된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 만족했다. 내비게이션 브랜드 ‘아틀란’으로 알려진 맵퍼스는 자율주행차 시대 핵심인 고정밀지도 구축에 한창이다. 그는 “입사 초기부터 글로벌 기준에 맞게 고정밀지도를 개발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며 “일반적인 IT(정보기술) 회사나 지도회사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포기하고 중기행…내 꿈은 해외영업

하지만 여느 한국 부모가 그렇듯 이들 역시 중기에 취업하는데 대해 부모님을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2014년 UC버클리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16년 9월부터 교육업체인 에스티유니타스에서 근무 중인 정아영(29)씨는 첫 직장부터 국내의 한 교육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을 택했다. 그는 “교육에 관심이 많던 중 지인의 추천이 있어 스타트업을 선택했다”며 “하지만 부모님은 ‘이상한 길로 가는 것 아니냐’는 말과 함께 계속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권유했다”고 돌이켰다.

김대근씨는 2016년 상반기 신한은행에 합격한 전력이 있다. 그는 “입사 포기를 이야기하자 제 부모님도 ‘비싼 돈 들여 유학시켰더니…’라는 반응을 보였다”며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은행업무가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겨우겨우 설득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무훈씨는 부모님 세대는 중기에 대한 정보를 알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운을 뗐다. 그는 “한샘은 중기임에도 국내 최대 인테리어 기업이지만 부모님 세대는 단순한 주방가구 업체로만 알고 있다”며 “어떤 기업이고 왜 입사해야 하는지 오랜 시간 충분히 설명을 해야 겨우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중기로 눈을 돌린 또다른 이유는 문화다. 대기업의 경직된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정아영씨는 “회사가 수평적 의사결정, 스타트업 문화를 지향한다”며 “호칭부터 모두를 ‘님’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이무훈씨는 “직무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오후 5시면 업무를 종료한다”고 덧붙였다.

호주 투자은행에서 인턴을 경험한 김영준씨는 “흔히 알고 있는 IT 회사의 부정적 이미지처럼 호주 은행 역시 야근을 밥 먹듯 했다”면서 “맵퍼스는 중기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일이 몰릴 때를 제외하고 과도한 야근 혹은 주말 근무가 없다”며 만족했다.

규모로 재단하면 좋은 중기 찾기 어려워

회사마다 독특한 제도도 있다. 에스티유니타스는 ‘인사이트 트립’(Insight Trip)이라는 포상 여행제도를 운영한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여행 계획서를 받아 두달마다 1개 팀을 선발한다. 선발된 팀에게는 항공료와 숙박, 여행자보험을 포함해 1인당 200만원의 여행비를 지원한다. 웰크론강원은 평사원들을 중심으로 한 ‘주니어보드’(Junior board·청년중역회의)를 운영한다. 이는 평사원들의 회의체로 다양한 전략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도출한 결과를 실제 경영에도 반영한다.

이처럼 ‘취업할 만한 중기’는 곳곳에 있지만 일반적인 인식은 아직까지 낮은 편이다. 4인방은 가장 큰 이유로 매출에 따른 ‘구별짓기’를 들었다. 김영준씨는 “무조건 규모·매출로 기업을 가른다”며 “다양한 잣대로 기업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대근씨는 “사실 기업에 대해 잘 몰라서 알짜 중기를 못찾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중기에서 가능성을 찾았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무훈씨는 “지금 맡고 있는 사업부는 채 10년이 안 된 젊은 조직”이라면서 “20·30년 후 전 세계에 제품을 판매할 꿈을 준비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정아영씨는 “사실 지금도 어떤 업무가 나에게 맞는 옷인지 찾아가는 과정”이라면서 “머뭇거리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도전하며 가능성을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대근씨는 “음지와 양지, 높고 낮은 것을 두루 경험해본 사람만이 높이 올라갈 수 있다”면서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제가 작은 음지에서 일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의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이곳이 양지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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