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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재정당국이든 통화당국이든 금융당국이든) 요즘 각 기관이 한자리에 모이면 하는 고민은 똑같아요. 그런데 정작 답은 없어서 다들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가 전한 최근 정책당국의 분위기다. 디플레이션(물가가 하락하고 경기가 침체하는 현상)의 시대, 각 기관이 알력다툼은 커녕 “경제를 살리자”는 기조는 같아졌지만 정작 뾰족한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인플레이션 파이터’가 존재이유인 한국은행은 장기간 디플레이션이 낯설다. 돈을 쓰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한은이 서툴다는 건 최근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이는 선진국 중앙은행 모두 마찬가지다. 돈을 손에 쥐어줘도 안 쓰니 아예 바닥에 쭉 깔아놓자는 게 양적완화의 골자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이 이랬다. 그런데도 세계경제는 주류 경제학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소비자가 ‘값이 싸진’ 돈을 주머니에서 꺼내고 동시에 생산자도 늘어나면서, 고용이 좋아지고 다시 소비여력이 커지는 경제성장 선순환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거품만 키운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럼에도 중앙은행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또 양적완화 외에는 마땅치 않다. 각국 중앙은행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포럼 방문중 NHK와 인터뷰에서 “2% 물가상승률을 위해 필요하다면 추가 완화든 무엇이든 주저없이 금융정책을 조정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경기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으며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발언 직후 나온 것이어서 더 주목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한은의 통화정책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은맨’들은 기본적으로 매파(물가안정을 중심에 둔 금리인상 선호) 성향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처지다. 공동락 코리아에셋투자증권 매크로분석실장은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3%로 하향했지만 최근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기 위축으로 나타날 경우 2%대로 추가로 낮출 가능성이 크다”면서 “그럴 경우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이란 기대는 더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책의 실효성이다. 돈을 흩뿌려 놓는다고 해서 쓰지 않는다는 건 이미 증명되고 있다. 완화 일변도로 가다가는 점점 더 ‘답이 없어지는’ 미로에 빠질 가능성만 커질 수 있다. 인류는 이 정도로 돈의 값이 쌌던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앙은행도 무엇인가 하긴 해야 하기 때문에 양적완화를 하지만 비판도 많고 부작용도 크다”면서도 “(돈풀기 외에는) 마땅히 쓸 정책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