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 상인 마르코 폴로는 1271년 이탈리아를 떠나 아시아로 여행을 떠났다. 그는 1295년까지 24년간 아시아 대륙을 돌아다닌 후 고향으로 돌아와 그동안 보고 들을 것을 정리해 1299년 ‘동방견문록’을 출간했다. 마르코폴로는 고향으로 돌아올 때 나침반, 화약, 종이 등 당시 중국 최신물품을 함께 가지고 왔다. 이처럼 중국 문물이 세계에 소개되는 현상을 경영학에서 ‘마르코폴로 효과’라고 부른다.
700여년 전에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 선진문물을 서양에 선보였지만 이제는 거꾸로 중국이 서구 문물이나 기술을 적극 수용한다. 중국 정부와 기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해외투자를 한 후 첨단기술과 선진 경영기업, 브랜드 등을 중국으로 들여오는 ‘역(逆) 마르코폴로 효과’가 대세다. 낮은 임금으로 제품을 만들어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한 중국이 국적이나 업종을 가리지 않고 해외 선진기술과 글로벌 브랜드를 사들이는 국가·기업 경영전략을 통해 주요 2개국(G2)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무대에서의 중국의 굴기(우뚝 일어섬)는 6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올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16’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CES는 향후 몇년간 글로벌 시장을 쥐락펴락할 첨단기술과 신제품을 선보이는 곳이다. 올해 CES에 참가한 3600여개 기업 가운데 33%가 중국업체다. 전시관 3곳 중 1곳이 중국기업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CES 단골 고객이던 일본 샤프와 도시바는 행사장에서 전시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 일본업체 빈 자리를 중국기업 TCL이 초대형 전시관으로 버젓이 차지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정보기술(IT)전쟁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의 굴기는 단순히 외국기업 인수·합병(M&A)만으로 이뤄진 결과물은 아니다. 베이징에 있는 중관춘(中關村)은 600여개 기업이 자리잡고 있어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며 중국 기술 인프라 구축의 총아로 등장했다. 이러한 창업 열기에 힘입어 중국내 벤처 창업자는 약 300만명으로 한국의 100배다. 중국이 일본은 물론 한국 제조업체를 이미 제쳤거나 곧 추월하는 현실도 어쩌면 이미 예견했던 일이다.
중국은 이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하는 ‘중국몽’(中國夢)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중국이 꿈꾸는 나라는 전세계 GDP(국내총생산)의 50%를 차지하며 문화적으로 세계를 풍미했던 한(漢)나라와 당(唐)나라다. 다소 과장되고 시대착오적일 수 있겠지만 시 주석의 ‘중국몽’은 중화 민족의 대부흥을 통해 중국이 경제적·군사적 강대국뿐만 아니라 문화적 강대국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야심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러한 중국 위세에 그동안 전세계를 주름잡던 ‘워싱턴 컨센서스’도 퇴색하고 있다. 시장경제체제를 바탕으로 무역·자본 자유화, 정부의 긴축재정, 민영화·정부개입 축소 등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발전 모델인 워싱턴 컨세서스가 정부 주도의 경제발전을 내세운 ‘베이징 컨센서스’에 밀리는 양상이다.
중국이 이처럼 원대한 국가발전 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암담할 따름이다. 시대 발전에 보폭을 맞추지 못한 ‘적기 조례’(Red Flag Act)와 같은 대못 규제가 국내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는가. 디플레이션의 암운이 드리워진 한국경제호(號)를 살리기 위한 경제활성화법과 노동개혁법 입법은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묻혀 국회에서 먼지만 수북이 쌓여가고 있다. 오죽했으면 전기전자·항공·석유화학 등 산업별 15개 협회 등 24개 단체가 관련 법규의 입법을 촉구하며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을까. 경제의 최대의 적은 정치다. 영국 경제학자 이몬 버틀러(Eamon Butler)는 그의 저서 ‘시장경제의 법칙’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은 시장 선택보다 비효율적”이라고 설파했지만 세계경제 변화에 둔감한 이들에게는 소귀에 경읽기나 마찬가지다.
<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