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칼럼] 정보의 비대칭성과 드레스덴선언

김민구 기자I 2015.07.31 03:01:01
최근 주말에 동네 DVD대여점에서 미국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빌렸다. 첩보 스릴러인 이 작품은 정보를 독점해 사회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권력 ‘빅 브러더’(Big Brother)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는 마피아 일당과 미국국가안보국(NSA) 요원들 간의 총격전이 벌어져 양측이 떼죽음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NSA는 통신 감청 법안에 반대한 국회의원을 자신 요원들이 암살한 장면을 담은 컴퓨터 디스켓을 얻으려 했지만 마피아 일당은 NSA가 자신들을 해치러 온 것으로 오해하고 총을 난사했다. 양측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분위기에 휩싸여 비명횡사한 것이다.

이 영화 장면을 정보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소개한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역선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양측이 갖고 있는 정보에 차이가 있을 때 발생한다. 역선택은 정보의 불균형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마피아와 NSA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먼저 확인했다면 ‘대학살’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올해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는 한반도 역시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남북한이 최악의 군사적 충돌상황을 맞을 경우 양국 정상이 이를 피할 수 있도록 서로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핫라인이 사라진 지 오래다. 핫라인이 없어 정보부족과 정보왜곡이 심각하다 보니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비대칭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은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등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을 겪게 된 것이다.

우리처럼 국토가 양분됐지만 통일을 달성한 동서독은 조금 달랐다. 동서독은 통일 이전부터 상호간 핫라인 구축은 물론 상대방 영토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약 100여명을 주둔시켰다. 군사적 충돌을 막고 민족적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동서독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소화하고 인적 교류를 꾸준히 늘려 작은 물줄기가 합쳐져 거대한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듯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통일은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니고 양측이 쉬지않고 노력해야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탱고(춤)는 파트너 없이 혼자 출 수 없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서울과 평양에 경제단체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는 획기적인 제안을 내놨다. 북한 핵 문제가 아직 답보 상황이지만 전경련의 제안은 남북한의 정보불균형을 해소하고 경제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전향적인 제안임에 틀림없다.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은 낙후한 경제를 살리고 우리 정부와 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교차 연락사무소가 남북한 모두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업모델이 되기에는 아직 검증해야 할 단계가 남아있지만 북한이 화폐 개혁 실패 후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하는 등 시장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지금이 남북경협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독일 드레스덴 공대를 방문해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을 발표하면서 서울-평양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를 제안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북한이 박 대통령 제안을 일축해 무산됐지만 박 대통령은 이에 굴하지 않고 남북교류협력 방안을 더욱 밀어붙여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8·15 광복절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는 깜짝 선물을 내놓으면 금상첨화다. 중국과 유럽 등 글로벌 경기침체와 국내 디플레이션 조짐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는 국내 기업들을 위해서도 미개척 영역으로 남아 있는 북한 인프라 시장은 결코 놓칠 수 없다.

<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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