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린치, 뭘믿고 LG카드 ABS 인수했나

최한나 기자I 2004.12.23 07:15:00

"영업정상화에 신뢰..경영정상화는 아직"
긍정적 평가에 올인하기엔 2% 부족

[edaily 최한나기자] LG카드(032710)가 청산과 회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가운데 美메릴린치사와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계약을 체결, 관심을 끌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금융기관인 메릴린치가 LG카드의 채권을 전량 인수했다는 사실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LG카드에 분명한 호재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ABS 발행 사실을 LG카드 호전의 절대적인 시그널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메릴린치, 전량 인수.. 해외 자금 조달 `기지개` 메릴린치는 지난 21일 LG카드와 ABS 발행 계약을 체결하고 발행된 물량 전부를 단독으로 인수했다. 발행조건은 만기 2년에 표면금리 연 4.87%, 총 4억달러(약 42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지난달 삼성카드에서 신규 발행한 해외 ABS가 2년6개월 만기에 연 3.99%(3억달러 규모), 차환 발행한 해외 ABS가 2년 만기에 리보+0.66%(4억달러 규모)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금리면에서 그다지 우수한 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채권 시장은 다소 높은 금리보다는 해외 ABS 발행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LG카드가 해외 ABS 발행에 성공한 것은 지난해 2월 미(美)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와 계약을 맺고 3억달러를 발행한 이후 1년10개월만에 있는 일이다. 국내 금융기관보다 한층 까다로운 해외 증권사에서 ABS를 발행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해외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번 ABS 발행은 해외 보증보험사의 지급 보증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다. 순수하게 LG카드가 보유한 카드매출채권에 대한 평가만으로 발행이 결정된 것이다. 담보로 사용된 자산에 일시불 및 할부, 현금서비스 채권 외에 대환론 채권이 일부 포함됐다는 사실도 긍정적 분석에 힘을 더한다. LG카드 관계자는 "이번 발행에 담보로 잡힌 채권은 총 8900억원 정도"라며 "이 가운데 대환론 채권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무조건 불신부터 하고 보는 카드사 대환론이 포함됐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메릴린치는 청산을 포함,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고 철저한 실사를 거쳐 투자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긍정적 평가에 올인하기엔 `2% 부족` 지난 20일 LG카드 주가는 직전 거래일 종가 1만4000원에서 14.2% 급등한 1만6100원을 기록했다. 이날 상한가의 재료는 박해춘 LG카드 사장의 기자간담회. 간담회를 통해 그룹에 대한 우회적 압박과 메릴린치의 투자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은 추가 증자가 성사되는 쪽으로 대거 움직였다. 이날의 주가 상승은 해외 금융기관의 투자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그대로 보여줬다. 그러나 금융권 관계자들은 메릴린치의 ABS 인수 사실만으로 LG카드의 경영정상화를 절대적으로 확신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우선 ABS 발행 계약에는 트리거(조기상환) 조항이 포함되기 때문에 LG카드가 청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더라도 전액 회수가 가능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앞으로의 상황이 불투명하거나 자산건전성 악화의 우려가 있는 회사에 투자하는 경우에는 트리거 조항이 좀더 엄격하게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번 LG카드의 ABS 발행에도 자본 잠식율이나 신용등급 변동시 즉시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LG카드 관계자는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다만 트리거 조항은 일반적인 수준 정도로만 설정됐다"고 말했다. 또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ABS 인수는 적어도 메릴린치가 LG카드의 영업정상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ABS는 카드매출채권을 담보로 하는 만큼 채권 회수 및 영업력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투자 결정이 쉽지 않기 때문. 그러나 이 관계자는 "추가 증자 성사나 카드시장 활성화 등 LG카드의 경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이 남은 만큼 경영정상화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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