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고공행진 중인 물가를 잡기 위해 부가가치세 인하 카드를 빼들었다고 한다. △출산·육아용품 △라면·즉석밥 등 가공식품과 설탕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핵심 생필품에 대해 현행 10%인 부가가치세율을 5%로 한시 인하하겠다는 것이다. 주춤했던 소비자물가가 농수산물 값 폭등을 틈타 다시 3%대 상승률(2월)을 기록하자 짜낸 비상 대책의 하나다. 실제 지난 2월 기준, 설탕·소금·초콜릿과 편의점도시락 등의 가격은 최고 20.3%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나 부가세가 인하되면 서민들의 물가 부담이 소폭 덜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시기와 배경은 물론 파급 효과 등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세수 상황판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에서 총선 직전 인하 카드를 꺼낸 탓에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지난해 연간 국세 수입은 344조 1000억원에 그쳐 세수 펑크 규모가 56조 4000억원에 달했다. 역대 최대다.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법인세 결손액이 24조 8000억원이나 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 소득세와 함께 세수 기여도가 가장 큰 세목 중 하나인 부가세를 인하하면 나라 살림엔 더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부가세 세수는 지난해 73조 8000억원으로 전체 국세 수입의 21.4%였다. 세수 펑크가 여전한데도 세금을 또 깎아 주는 이유가 뭐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단일세율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모든 물품에 세율 차등 없이 일반적으로 작용하는 현행 부가가치세를 일부 품목에만 조정할 경우 앞으로 물가가 뛸 때마다 더 많은 품목에 대해 인하 요구가 나오면 어찌할 건가. 법 개정 등 절차적 문제를 떠나 조세 체계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정이 서민 생계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세금이 표심잡기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조세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까지 나온 마당에 무리하게 세율을 내린다면 마구잡이 퍼주기로 나랏빚을 400조원 넘게 늘린 문재인 정부의 흥청망청과 다를 게 없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위해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나라 밖 추세에도 역행한다. 당정은 보다 정교하면서 실효성 높은 물가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