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숙경 조선대 정책대학원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는 장기간 마약 밀매 경력이 있는 연구대상자들을 상대로 심층 면담을 진행하고 ‘마약 밀매자의 마약 밀매 경험에 대한 사례연구’ 논문을 제출했다.
◇ ‘지인 리스트’ 만들고 마약 판매 대상자 물색…중독되면 밀매꾼으로 포섭
논문에 따르면 대부분의 밀매 사범은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주변 사람들 위주로 마약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이 많고 입이 무거운 사람, 호기심이 많은 사람, 유흥 등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주요 타깃이 됐다.
일례로 한 밀매 사범은 지인 목록을 만들고 마약을 구매·이용할 가능성을 분석해 ‘높음’ ‘중간’ ‘낮음’으로 분류해 가능성이 크다고 분류한 사람들 중심으로 접근했다.
또 다른 밀매 사범은 마약 관련 전과자, 치료 환자 목록을 입수하고 목록에 오른 인물들 중심으로 접근했다. 한 번이라도 마약을 사용한 적 있는 사람은 마약의 유혹에 또다시 넘어오기 쉬웠기 때문이다.
마약 밀매 사범들은 자신 아래에 또 다른 마약 소매상을 여러 명 두고 자신은 도매상으로서 더 많은 이익을 챙기는 이른바 ‘다단계식’ 유통구조를 형성하려고 했다.
이에 밀매자는 타깃으로 삼은 지인에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마약을 판매해 중독상태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마약에 쓰는 지출이 늘어나면 이를 충당하기 위해 스스로 마약 밀매에 나서려 하기 때문이다.
도중에 마약 사용·밀매에 손을 떼려는 지인엔 마약을 사용할 당시의 강력한 쾌락을 떠올리게 하거나, 마약 범죄 전력을 주변과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 봉사활동하고 기부하던 그 소탈한 직장인…알고보니 마약상
밀매 사범들은 마땅한 직업이 없어도 평범한 직장인처럼 보이기 위해 오전 일찍 집을 나와서 의미없이 시간을 보낸 뒤 오후 6시께 집으로 돌아오는 등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했다.
돈이 많아도 눈에 띄는 고급 자동차보다는 평범한 차량을 선호하는 등 과시적인 소비를 삼가고, 평소엔 양복을 입고 다니거나 자신을 영업사원으로 소개하는 사례도 있었다.
또한 다수의 밀매 사범들은 자원봉사, 후원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향후 재판 시 선처를 받아내려는 목적등이 깔렸다는 게 논문의 분석이다.
유숙경 교수는 “밀매 사범들은 주로 지인을 공략하는 만큼 사범의 주변 인물들도 사후관리 대상에 포함해 마약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며 “마약 사범을 건전한 직업인으로 전환하고 주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치료공동체 참여를 의무화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또 “마약 사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은 오히려 그들이 더욱 정체를 숨기게 만든다”며 “이들을 치료받을 권리가 있는 치료 대상으로 인식하고 사회적응을 도울 수 있게 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