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 가격이 어떻게 책정되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세금이 약 40%를 차지한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올해 1월 국내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1562.9원이다. 이중 세금이 559.35원으로 38.4%다. 유류세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교통세) 396.70원에 교통세의 각각 15%, 26%에 해당하는 교육세와 주행세가 더 붙는다. 이 금액에 부가세 10%를 더한 값이 유류세다.
그렇다면 세금을 뺀 나머지 963.88원 중 주유소와 정유사가 가져가는 수익은 각각 어느 정도일까. 오피넷 잠정치로 계산하면 지난달 정유사가 주유소에 휘발유를 공급한 가격은 리터(ℓ)당 813.83원이다. 주유소 마진은 963.88원에서 813.84원을 뺀 150원 정도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카드사 수수료와 부가세, 인건비, 임대료를 빼면 마진을 100원 이상 남기기 힘든 구조다. 업계에서 주유소 사업을 1원 단위까지 마진이 빠듯한 ‘원 떼기 장사’라고 부르는 이유다.
정유사 수익을 살펴보자.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한 963.88원의 절반 이상은 해외에서 100% 수입한 원유가격이 차지한다. 지난달 평균 국제휘발유가격은 배럴당 95.6달러다. 이를 당시 원·달러 환율(1달러=1247.3원)과 ℓ단위(1배럴=159ℓ)로 환산해 계산하면 ℓ당 750원꼴이다. 여기에 수입 부과금과 원유 관세, 유통비를 더하면 정유사 영업이익률은 2%대로 떨어진다.
정부는 지난해 정유업계가 유류세 인하분을 100% 반영하지 않고 회사 이익으로 흡수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하지만 이 같은 유통 과정을 보면 정유사가 유류세 인하분을 전부 반영해도 소비자가 체감하기 어렵고 정유사 수익으로 돌아갔다고 보기에도 힘든 구조라는 걸 알 수 있다.
휘발유 도매가격이 대체로 원유가격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초 휘발유에 붙는 유류세 인하 폭을 37%에서 25%로 축소했다. 정부 논리처럼 유류세 인하분이 중요했다면 세금이 오른 1월 이후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계속 올랐어야 한다. 하지만 1월 둘째 주까지 2주 연속 상승하던 휘발유 가격은 3주 차에 선행지표인 국제유가가 떨어진 영향으로 하락세로 전환했다. 세금이나 정유사 마진보다 국제유가 영향이 더 크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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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효과’ 우려도 있다. 정부가 지적한 지역별 휘발유 가격 편차는 거리에 따른 수송비와 주유소 임대료 등 원가 차이에서 나온다. 거리가 먼 제주도 택배비가 더 비싼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 공급지와 가까워 유류 운송비가 덜 드는 울산은 보통 휘발유 최저가를 기록하고 서울로 올수록 비싸진다.
이처럼 정유사와 주유소 대리점은 영업전략과 지역 특성, 거래처별 물량에 따른 공급가 차이, 유통구조 등 다양한 요인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공급가격을 결정한다. 단순히 도매가격을 밝힌다고 해서 이 같은 구조가 바뀌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도매가격을 공개한 초반에는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는 주유소가 등장해 ‘출혈 경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출혈 경쟁의 끝은 경쟁업체의 몰락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에서 뒤처진 주유소는 폐업하고 남은 주유소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올려 암묵적 담합을 조장하는 결과가 초래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안 그래도 전국 주유소 수가 감소 추세인데 이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영업 주유소 2010년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전환했다. 폐업 가능성이 큰 ‘한계주유소’는 2021년 1033개(전체의 8.9%)에서 인구 감소에 따라 2030년 2배 이상 증가가 예상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무리하게 지역별 유가 격차를 없앤다는 발상으로 결국 여러 주유소가 폐업해 경쟁이 사라지면 배짱 장사를 하는 주유소만 남게 될 것”이라며 “유류세 인하 폭 전액을 소비자가에 반영하겠다는 자체가 과세 논리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금 인상은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분담하는 것이 기본적인 과세 원칙”이라며 “정부가 고유가에 무조건 소비자가를 낮추려는 모양새인데 그런 정책은 고금에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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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횡재세’를 비롯한 정유사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고유가로 거둔 실적이 ‘초과이익’이라는 시선 때문이다. 초과이익을 냈으니 고통을 분담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국내 정유사 수익은 국내 휘발유 판매 가격이 아닌 해외에서 사 온 원유가격에 정제·가공 후 판매하는 가격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해외 거래 내용은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 업계 관계자는 “도매가격 공개는 단순히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고 해외 거래에 영향을 미친다”며 “정유사 수익의 60% 이상이 수출로 발생하는데 가격 공개를 통해 해외 거래처에서 가격 인하 압박이 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결국 정유사와 대리점 모두 영업 환경이 척박해지는데, 이는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라고 우려했다.
도매가격 공개 확대는 해외에서도 도입한 적 없는 전례없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어떤 상품도 이런 정도의 단계까지 정보공개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며 “국민 정서가 유류제품 가격에 예민한 측면은 있으나 이번 정책은 국제적으로도 매우 과도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