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고백을 쓴 회고록부터 대권주자를 다룬 비판서 및 인생역정을 미화한 책까지. 출판계에 따르면 1~2월 출간 도서 중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김동연 허경영 등 대권주자를 키워드로 내세운 책들만 줄잡아 130여권에 이른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 최대 관심사가 ‘정치’라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오늘날 정치(인) 관련서는 자전적 에세이, 회고록, 인물평전, 르포르타쥬(보고기사), 진영 옹호 혹은 상대진영 비판서 등 다양성이나 질적 면에서 업그레이드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일부 평전과 특히 회고록 형태의 책들은 여전히 독자들의 평균적 지적 수준과 기대치에 못 미친다.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정보 없이 확증편향만 강화하는데 그친다는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와 교보문고 등 최근 서점가에 출간된 정치 관련 도서들을 보면, 특정 집단의 주장과 정치적 지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 있다. ‘윤석열 X파일’(열린공감TV), ‘굿바이, 이재명’(지우출판), ‘그래도 윤석열’(글마당), ‘윤석열의 힘’(오풍연닷컴), ‘이재명, 허구의 신화’(피비콘텐츠), ‘이재명의 일 포스티노’(백조출판사)를 비롯해 이번 대선 후보는 아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을 담은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가로세로연구소), ‘박근혜 1737’(커뮤니케이션열림) 등이 그것이다.
이중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와 ‘윤석열 X파일’은 출간을 전후로 서점가 베스트셀러 종합 1, 2위에 각각 오르며 상위권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지지층의 팬덤 덕분이다. 서점가에 따르면 정치(인) 책 판매량은 지지세력의 팬심이 크게 작용한다. 두 책은 50~60대의 구매가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며, 도서 판매량의 상당 부분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지지율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를 다룬 책도 쏟아진다. 권수만 놓고 보면 이 후보의 이름이나 얼굴이 책 표지에 들어간 책이 윤 후보 관련 도서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이 후보와 윤 후보를 싸잡아 비판한 책도 적지 않다. 김종인 국민의힘 전 총괄선대위원장은 최근 펴낸 자신의 저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21세기북스)에서 “어차피 양당 후보 중 한 당이 당선될 텐데 누가 되더라도 나라 앞날이 암울하다”며 “최악 중의 최악, 차악조차 없는 선거”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직접 집필에 관여한 책만 무려 14권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함께 대담집 ‘선을 넘다’(시원북스)를 펴냈다. 특히 2012년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김영사)은 ‘문재인의 운명’(북팔)과 더불어 출판정치의 새 지평을 연 베스트셀러로 꼽힌다. 자신의 정책과 비전, 인터뷰이만이 아닌 인터뷰어가 등장한 대담형식의 책은 색다른 시도였다는 평가다.
◇출판계-정치권 공생 관계
출판계와 정치권의 만남은 오랫동안 공생해온 시장이다. 교보문고, 영풍문고를 비롯한 국내 주요 대형서점들도 선거철이면 대선주자 관련 별도의 매대를 설치하는 등 대선 특수를 노린다. 책은 출마를 위한 정치적 이벤트의 수단이 되기도, 주요 후보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교감 통로가 되기도 한다.
다만 일반 도서의 경우 서점 유통기한이 평균 3개월이라면, 정치 책은 보통 한 두달 이내로 유통기한이 짧아 출판사의 위험 부담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중경제론’(청사·1986년)은 그 시절 보기 드문 정치 책으로 회자되곤 한다. 독재 시절 김 전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생각과 비전이 무엇인지를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는 게 출판계 설명이다.
막상 주목받는 책은 많지 않아 보인다. 3자적 시선에서 대선 후보들의 여러 측면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은 별로 없다는 게 유창선 시사평론가의 얘기다.
유 평론가는 기획회의 통권 553호 ‘출간정치X파일’-‘정치는 책을 어떻게 소비해왔는가’라는 주제의 칼럼에서 “대선 후보들의 이름을 제목에 달고 나오는 책들은 많지만, 대부분 상업적 목적만 갖고 부실하게 만들어진 책이거나 지지자들을 위한 홍보성 책인 경우가 많았다”며 “책은 진영 간 증오의 대결을 넘어 조정과 통합의 정치를 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평론가는 “민주시민에겐 정치의 일상화가 필요한데, 정치(인) 관련서는 앞으로 많아져야 하고, 실제로도 더욱 증가할 것”이라면서 “출판은 휘발성 강한 영상 미디어보다 책임성 측면에서 팩트와 다양한 차별화가 요구된다. 인문 문학 실용 등 정치 관련서의 분야도 훨씬 다양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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