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미술개미' 날다

오현주 기자I 2021.07.07 03:30:00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무섭게 팔려나간다.” 내다 거는 족족 들고 간다는 요즘 미술시장 얘기다. 해묵은 레퍼토리를 또 꺼낼 판이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수치로만 보자면 최대는 아니다. 대한민국 미술시장의 최고점은 2007년에 찍었다. 6045억원 규모였다. “물감도 마르기 전에 채갔다”던 그때가 맞다. 그런데 이만큼은 아니었다. 올해 상반기, 단 6개월 동안 치솟은 가파른 기울기가 말이다. 그걸 재본다면 ‘최대’가 맞을 거다. 바닥까지 눌렸던 용수철이 제대로 튀어올랐다고 할까.

입에 딱 붙은 ‘후끈’ ‘뜨거운’ ‘달아오른’의 활황 온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최근 수치로 확인했다. 서울옥션·케이옥션 포함, 국내 8개 미술품 경매사의 상반기 매출액이 1483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지난해 490억원보다 3배 이상 뛰었고, 상반기 시장이 가장 좋았던 2018년 1030억원보다도 50%쯤 늘어난 거다. 연간매출액에 비춰볼 땐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상·하반기를 합산한 낙찰총액은 1153억원에 불과했다. 2019년 총액 역시 1565억원으로 올해 상반기와 별 차이가 없다. 5년래 가장 좋았던 2018년 총액도 2194억원에 그쳤더랬다.

미술시장에서 경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안팎. 여기에 화랑·아트페어 등의 성과를 합쳐 전체 규모를 잡는데. 하반기에도 상반기 정도라면 경매시장에서만 3000억원 달성은 무난할 테고, ‘드디어 5000억원’을 향한 기대감에 부풀 수밖에. 미술계가 ‘5000억’에 목매는 이유가 있다. 6045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2007년 스토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가 냉수를 들이부었으니까. 이후 13년간, 근처는커녕 반 토막 시장까지 지켜봤다. 그래서 일단 5000억에 닿기라도 해보자 했던 거다. 그 꿈의 경계선을 상반기 경매시장 총 거래액이 바짝 당겨낸 것이고.

사뭇 달라진 분위기는 지난달 24일 케이옥션 ‘6월 경매’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그날 성적은 낙찰률 75%에 낙찰총액 100억 7340만원. 상반기 대미를 장식한 훌륭한 성적이다. 그런데도 왠지 섭섭했던 건, 바로 전날 서울옥션이 만든 대기록 때문이다. 243억원어치(낙찰률 87%)를 팔아치웠던 거다.

물론 거품을 우려하는 눈길도 없진 않다. 주식·코인·부동산에 이어 ‘묻지마 투자’가 예술계로 번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 말이다. 중요한 건, 다른 게 보인다는 거다. ‘판’이 바뀌었다는 신호. 벼랑 끝 미술시장이 급반전한 배경에 등장한 소규모 투자자 말이다.

이제껏 한국 미술시장은 ‘비싼 작품을 얼마나 더 비싸게 파는가’에 좌우됐다. 그 한 점을 팔아내면 ‘잘한 장사’, 못 팔면 ‘망한 장사’가 됐다. 팔면 ‘안정적 시장’이라 했고, 못 팔면 ‘불안한 시장’이라 했다. 그러니 ‘큰손’의 지갑이 얼마나 열리느냐가 관건일 수밖에. 그런데 요즘 상승세가 고무적인 건 굳이 큰손만 기다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미술품컬렉션, 그 용어가 부담스럽다면 ‘아트테크’에 뛰어든 막강세력이 나타난 건데. 이른바 ‘미술개미’라고 할까. 특유의 바지런함으로 눈과 시간, 돈을 보태는 이들 말이다. 새삼 미술품재테크에 재미를 붙인 MZ세대를 앞세워. 그들이 이제 기성 컬렉터를 줄 세운다. 예전처럼 우아하게 낙점만 하다간 그림 한 점 구하기 힘들게 됐단 뜻이다.

미술시장은 근본적으로 이중적 생태계를 가졌다. 억 단위 대가의 작품과 백 단위 신진작가의 작품이 공존한다. 그러니 생존법칙도 이중적일 필요가 있다. 시장규모를 키우는 큰손의 ‘한방’도 긴요하지만, 시장바닥을 다지는 미술개미의 ‘잰걸음’도 절대적이란 얘기다. 예술을 돈으로만 본다는 고답적 시선도 접어두자. 처음부터 ‘이건희 안목’을 타고난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벼랑 끝 미술시장이 반전한 건 올 초. 슬슬 불던 훈풍이 열풍으로 휘몰아쳤다. ‘큰손’의 지갑에 희비가 갈렸던 이전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그 시장을 주도한 ‘뉴페이스’가 보였다는 건데, MZ세대를 앞세운 ‘미술개미’다(이미지=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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