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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슬기로운 직장생활을 위한 휴대폰 사용권

송길호 기자I 2021.06.30 05:50:00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 기계공학부 교수] 강의할 때 가끔 휴대폰 무음전환을 깜박할 때가 있다. 머피의 법칙, 꼭 그때 벨이 울려 민망해지곤 한다.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도록 강조한 내가 곤란해지고, 강의 흐름이 끊겨 집중도도 떨어진다. 몇 해 전부터 ‘포노사피엔스’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지혜로운 인간, 즉 ‘호모사피엔스’가 일하는 인간 ‘호모파베르’, 놀이를 즐기는 ‘호모 루덴스’를 넘어,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나아가 확장된 메타버스로 활용성이 증대된 스마트폰 시대의 인간을 의미한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 활용으로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근로시간에 사적인 사용으로 업무의 생산성 저하나 안전사고 위험까지 대두되고 있다. 반대로 휴대폰 사용이 근로자의 권리문제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쿠팡 물류창고 화재 파장이 불매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작업시간 휴대폰 반납, 정해진 점심시간 외에는 휴식 없는 ‘악덕기업’이라는 요지다. 반면 쿠팡불매를 비난하는 내용도 많다. 자칫 일자리를 위협받거나 안전사고 위험 등을 근거로 작업 중 휴대폰 사용제한은 적법하다는 의견이다.

유럽에서는 슬기로운 휴대폰 생활을 위한 법제도가 일찌감치 논의되었다. 독일 폭스바겐은 2011년 12월 협약을 통해 1154명의 본사 근로자들의 업무용 스마트폰을 차단하여 근로시간 이외에는 연락을 받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2015년에는 독일정부 차원에서 국민합의에 기초한 ‘노동 4.0’을 마련, 취업능력 제고, 유연하고도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근로시간, 양질의 근로조건 강화, 산업안전보건 4.0, 사회적 파트너십을 통한 변화 등 총 8개 과제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프랑스는 2015년 9월 오렌지텔레콤의 인사책임자 브루노 메틀링이 노동법 개정을 앞두고 노동부장관 이리앙 엘 컴리에게 ‘디지털 변화와 직장생활’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디지털화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노동과 개정될 노동법이 서로 현실에 맞게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보았으며, 여러 권고내용 중 ‘연결차단권’이 핵심이었다. 보고서는 디지털 기기 사용이 근로자들의 사생활 침해와 정보 과잉과 같은 역효과를 일으킨다고 지적, 근로자들의 업무에 관한 소통 또는 접속을 시간을 정해 일정 시간 차단하는 권리를 제안했다.

우리도 주 52시간 근로가 시행되고,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느냐’를 중시하는 ‘워라밸’이 확산되면서 ‘연결차단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착 되어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연결차단권’을 굳이 법으로 제정할 필요가 있는지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동향을 보면 근로자들에 대한 유연한 보호를 위하여 노동법의 역할을 줄이고 노사 간 협의에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

근로시간 휴대폰 사용에 관해 경영주 입장도 중요하다. 얼마 전 정밀 사출제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사장은 작업자가 사출작업을 하면서 휴대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어 안전사고와 불량품 발생 우려가 있으니 휴대폰을 보면 안 된다고 지적하자 작업자는 그 자리에서 즉시 퇴사하여 지역 노동청에 잔여임금과 퇴직금 청구 신고를 하였다는 애로를 털어놓았다. 갑작스런 인력 공백으로 인한 생산차질은 누구에게 보상을 청구해야 할까.

우리는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의 강국임에도 여전히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 판단에 매우 인색하다. 우리의 노동생산성은 OECD 평균의 70% 이하 수준이지만 최저임금을 비롯한 임금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우리보다 노동생산성이 높은 나라들은 업무 집중도가 높고, 노사 상호합의를 철저히 준수한다. 근무시간에 인터넷을 보거나, 사사로운 전화를 하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권리와 함께 의무의 형평에 주목하여 선진 일터문화 추이를 거울삼아 법과 제도를 정비할 시점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근로 환경을 외면한 법제도는 해악을 초래한다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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