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김정남 기자I 2019.07.01 06:00:00

축복 아닌 리스크 된 장수
경제에도 악영향 불보듯
젊은층 미래 삶 위해서도
고령화 대책 마련은 시급



[손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한 나라의 인구에서 노인의 구성이 커지는 원인은 기대수명 연장과 저출산이다. 오래 사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선택이다. 축복과 선택의 문제에 있어 정책이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다. 그런데 축복과 선택이 결합해 파괴력이 큰 위협이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연금과 보험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로 장수(長壽) 리스크라는 말이 있다. 오래 사는 것을 축복이 아닌 위험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고령층이 당면한 고통스러운 상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돈 없이 오래 사는 것,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것, 소일거리 없이 혼자서 오래 사는 것.

첫째, 돈 없이 오래 사는 문제를 짚어 보자.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2011년 48.8%로 최고점을 기록한 후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회원국 평균은 노인빈곤율이 14%에 불과하다. OECD는 안정적으로 노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은퇴 전 소득의 60~70%(소득대체율)를 유지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선진국은 연금을 통해 이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소득대체율을 끌어올렸다. OECD 평균은 50%대인데 우리나라는 2017년 기준 40%에 미치지 못 한다. 기초연금 도입과 정년 연장 등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노후에 기초적인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둘째, 아프면서 오래 사는 문제도 현실은 그리 밝지 못하다. 우리나라 고령층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는 8.4년이다. 질병이나 다친 상태로 8.4년을 버틴다는 얘기다. 장기요양보험, 치매관리법 등 노인 돌봄과 요양지원이 강화되었지만 역부족이다.

셋째,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나 문화공간도 부족하고 가족 없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 문제도 심심찮게 나온다. 산업화·정보화시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삶을 지배하고 삶은 빛의 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노인이 돼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새로운 것들을 접해야 한다. 노인의 지혜와 경험은 더이상 의미있는 자산으로 취급받지 못 한다. 심한 경우 노인 혐오, 노인 학대로 이어지는 사회 문제로 번진다. 이를 반영하듯 노인자살률은 10만명당 58명으로 OECD 평균의 3배에 달한다.

우리는 이제 고령사회를 지나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다. 한때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었던 오늘을 견인했던 고령층이 과거의 지혜와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당당하게 살아나가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이들이 고통 없이 삶의 무대에서 퇴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주역이 노인이 됐을 때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제도적인 개편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일할 수 있는 고령층의 취업을 도와 연금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족한 소득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고용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고령자에게 지급되는 기초소득과 의료서비스 제공을 확대하는 데도 힘써야 한다. 노인 세대의 문화와 신체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인 인권 또는 노(老)감수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과 홍보도 시작하자. 미래의 고령층을 위해서는 소득보장이 충분치 않은 국민연금을 보완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가입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에도 힘쓰자.

고령화의 진전은 총체적으로 한 나라 경제에 암울한 메시지를 던진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경제 전체의 생산 감소, 수요 둔화 및 생산성 하락을 동반한다. 이 과정에서 재정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인구가 줄어드니 세금수입이 줄고 고령인구가 늘어나니 복지지출은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이 역할을 담대하게 수행하면서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민간 부문에서도 고용과 복지에 동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노인이 주역인 나라는 없겠지만 노인이 비참에 처하지 않고 당당하게 퇴장할 수 있도록 나라는 그 소명을 다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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