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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적 지정제 등 획기적 전기 마련해
회계 개혁 논의가 시작한 시기는 이전 정부 시절인 지난 2016년이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분식회계로 부실 감사 등에 대한 논란이 일자 금융위원회는 회계제도 개혁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회계 개혁은 속도를 냈다. 2017년 9월 회계개혁·선진화 3법(외부감사법 전부개정안, 공인회계사법·자본시장법 일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 10월 공포됐다. 9년 중 3년은 정부가 회사의 감사인을 정하는 유례없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전기를 마련했다.
금융위는 이후 핵심감사제와 표준감사시간제,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인 등록제 등 후속 조치들을 내놓으면서 제도의 틀을 다졌다. 지난해 2월 외감법 시행령 전부개정안을 통해 세부 사항을 다듬은 후 11월 신 외감법이 본격 시행됐다.
신외감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지난 2년여간 회계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독립성과 함께 책임도 커진 회계법인들이 자체 품질 강화에 나서면서 외부감사는 금융투자시장의 화두가 됐다. 2017년과 지난해 감사의견 비적정(한정·부적정·의견거절)을 받은 상장사는 각각 21개, 33개에 달했다. 재무제표 신뢰를 얻지 못하는 곳은 증시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면서 경영 건전성 강화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특히 대형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020560)의 경우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 ‘한정’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퇴진과, 회사 매각을 촉발한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 사태는 외부감사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다는 대표 사례가 됐다.
올해부터 감사인 지정과 자산 2조원 이상 기업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가 실시되는 등 제도가 본격화되면 기업의 회계 투명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 회계기준 논란 커져…표준감사시간은 ‘진통’
회계 관련 제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진통도 적지는 않았다.
우선 수십여곳의 상장사가 상장폐지 위기를 겪으면서 투자자들의 피해 우려가 커졌다. 회사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외부감사인의 일방적인 감사 일정과 자료 제출 요구가 감사 대란을 일으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해 셀트리온(068270) 분식회계 의혹과 제약·바이오 업계에 대한 테마감리로 해당 업종 주식이 떨어지자 투자자들은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분식회계 의혹은 원칙중심 회계기준에 대한 감독 논란을 촉발했다. 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금융당국이 회계에 대한 기업의 재량권을 무시하고 사후 징계 위주의 감독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표준감사시간 도입도 논쟁거리였다. 감사 품질을 높이기 위해 업종·회사별로 필요한 감사시간을 규정토록 했는데 이에 따른 감사보수가 크게 오를 것이라며 재계에서 반대 입장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표준감사시간 제정 과정에서 기업 단체와 한국공인회계사회측은 팽팽한 대립 구도를 보였다.
◇ “선순환 통해 자본시장 성숙 도모할 때”
한국회계학회장인 조성표 경북대 교수는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현재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점수로 치면 80점 수준이라면서도 제도 연착륙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회계 개혁의 방향성은 올바르게 가고 있지만 기업과 학계, 정부가 공감할 수 있도록 제대로 정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새로운 제도에서 원칙중심 회계를 어떻게 잘 구현할 수 있을지가 주요 과제”라고 제언했다.
정부도 회계 개혁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일단 제약·바이오 개발비의 회계처리와 비상장주식에 대한 가치 평가 등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회계 처리 관련 감독지침을 연달아 제시했다. 회계기준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일정 기준을 준용할 경우 제재하지 않겠다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회계 불확실성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금융위는 지난달 관계기관과 회계개혁 정착지원단을 구성했으며 금융감독원과 회계감독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제도 연착륙을 도모하는 중이다. 감사 대란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회계법인의 연중 상시감사 시스템 구현을 주문하기도 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당시 “회계 개혁의 성공을 통해 자본시장이 한 단계 성숙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봤다”며 “현장 목소리에 대한 신속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선순환 체계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