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순용 기자] 직장인 박(여·34)모씨는 과도한 업무와 극심한 스트레스로 피곤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지속적으로 재발하는 입 안이 헐고 따끔따끔한 궤양을 단순 구내염이라 생각해 약국에서 구매한 항생제를 복용하고 연고제도 주기적으로 발랐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궤양이 입안 전체에 번져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병원을 찾은 박 씨는 이름조차 생소한 ‘베체트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바쁜 직장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규칙한 생활 패턴이나 좋지 못한 생활 습관 등으로 인해 면역체계의 불균형이 생기곤 한다. 면역체계의 균형이 깨지면 몸 속 면역세포들이 서로를 공격하게 되는데 이를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한다.
베체트병은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으로, 구강 궤양, 생식기 궤양, 눈의 염증, 피부 병변 등이 주요 증상이다. 이 같은 증상들은 동시에 나타나거나 수년에 거쳐 단계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매우 다양한 증상으로 시작되지만 일반적으로 구강 궤양이 가장 먼저 발생한다. 구강 궤양이 발생한 환자의 70%는 외음부 궤양과 함께 다리 피부에 압통을 동반한 결절 홍반 또는 모낭염 등이 생겼다 없어지는 것이 반복되기도 한다.
베체트병은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혈관염의 일종이기 때문에 피부뿐만 아니라 혈관이 지나는 곳 어디든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외음부 염증 발생 시 비뇨기와 생식기능에 장애가 생길 수도 있으며 드물지만 관절, 위장관, 심장, 폐 등의 장기에 침범해 치명적인 후유증을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베체트병으로 인해 안구 포도막염에 걸린 경우에는 실명에 이르기도 한다.
국내 2만 명 이하의 유병률을 보이는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되며, 발병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진단은 베체트병의 다양한 증상과 징후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눈에 보이는 구강궤양, 성기궤양, 특징적인 피부병변 여부를 포함한 안구염증, 초과민성 반응 여부 확인 등을 통한 종합적인 판단을 근거로 진단한다. 베체트병 검사에 있어 혈액검사는 염증의 활성 정도를 파악하거나 합병증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검사이며 혈액검사만으로는 베체트병을 진단하기가 어렵다.
베체트병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발생할 수 있으며, 나이가 젊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다. 베체트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숙면을 통해 휴식을 취하고 면역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 영양가 높은 음식이나 비타민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또한, 과로 및 스트레스 관리를 철저히 하여 면역체계에 교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면역성 질환은 원인이 불분명한 만큼 치료가 어려운 난치성 질환이 대부분이다. 베체트병 또한 난치성 질환에 속하지만 결코 불치병은 아니다. 베체트병은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병증이 아니며 상태가 호전되고 완화되는 것을 반복하는 질병이기 때문에 발병 시 지속적인 관리와 꾸준한 관찰이 필수다.
김재훈 고대 구로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베체트병은 혈관염으로서 다양한 부위의 증상을 보이는 질환이며 그 증상들은 다른 자가면역질환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며 “베체트병으로 의심되는 증상, 특히 반복적인 구강 궤양이 쉽게 낫지 않고 지속하여 재발한다면 신속하게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