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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현대차 개편 서프라이즈…당장 득실보다 10년後 봐야"

김상윤 기자I 2018.04.02 05:03:10

[공정거래위원장 특별대담]②
-현대차 지배회사체제 평은…
지주사 대신 오너일가 지분 매입 결단
대주주의 사회적 책임 의지 반영한 것
-삼성의 갈 길은…
사외이사 추천방식 내부→외부로 변경
형식적 법 준수 넘어 사회 인식 반영을

[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30일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대담=이데일리 선상원 매크로에디터, 정리=김상윤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과거 ‘재벌 저승사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하지만 그는 취임 이후 칼을 마구 휘두르지 않았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개선하도록 독려하고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 이른바 ‘포지티브 캠페인’ 방식이다. ‘재벌 개혁’보다는 오히려 ‘갑을 문제’ 개선에 방점을 찍었다. ‘김상조가 와도 별거 없다’란 비판도 나왔지만, 그는 기다렸다. 조금씩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이 잇따라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최근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선 호평했다. 김 위원장은 “나도 놀랐다. 그간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를 통한 승계라는 아킬레스건이 있었는데 이번에 존경받는 최고경영자(CEO)로서 평판을 구축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다만 삼성에 대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삼성이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인 지난달 30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있는 집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재벌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목표를 들었다. 선상원 정경부장(매크로에디터)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취임 10개월째다. 그간 성과에 대해 자평한다면.

단기-중기-장기과제를 나눴는데, 단기과제는 제 생각대로 거의 어긋남 없이 일이 진행됐다. 1년차 성과만 본다면 가맹점 등 갑을관계 문제 개선, 포지티브 캠페인 방식의 자발적인 재벌 지배구조 개선 유도 등 나름대로 성과가 나오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적어도 과거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비가역적인 변화는 시작됐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에 상호 조율이 있었나.

제가 현대차와 조율해 지배구조 방식을 결정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 역시도 이번 현대차 개편 내용은 ‘서프라이즈(놀라움)’였다. 그럼에도 현대차가 이런 개편밖에 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벌의 지배구조개편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영권 유지와 승계다. 구체적인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적은 비용을 택하는 것, 나머지는 법률적·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첫번째 방식이 지주회사 개편이다. 흔히 말하는 ‘자사주 마법’(현재 상법상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는데, 지주회사로 전환이 되는 과정에서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활하는 현상)을 사용한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 방식이 어려웠다. 정의선 부회장의 아킬레스건이 글로비스를 통한 승계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지주회사 전환을 예상했지만, 법률적 문제는 없더라도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존경받는 최고경영자(CEO)로서 평판을 구축해야 하는 입장에서 지주사 전환 결정을 내리긴 어려웠을 것이다.

-순환출자·일감몰아주기를 해소도 의미 있지 않나.

단순한 순환출자 해소 차원이 아니다.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적절한 시점에 의사 결정을 내리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다. 지주회사든 지배회사든 어느 방향으로 갈 수 있다. 현대차가 지배구조 개편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결정에 대해 책임지는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 게 매우 의미 있는 부분이다. 현재 현대차의 사업이 다소 어렵더라도, 이런 시스템만 유지하면 현대차는 향후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금산분리 문제로 지주사 체제 변경이 어려웠던 건가

금산분리 원칙도 어떻게 구현할지는 나라마다 업종마다 달라져야 한다. 자동차 회사에 금융부분이 없으면 차를 판매하기가 쉽지 않다. 자동차 회사보고 캐피털을 하지 말라고는 할 수 없다. 현대차의 경우 지주회사체제로 가더라도 일부 금융계열사는 지주회사 체제 밖에서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경제적 효율성이나 사회적 정당성 차원에서 의미가 없다. 현대차가 지주회사가 아닌 지배회사체제로 간 이유다.

-주주들은 모비스-글로비스간 합병비율 지적을 한다

현대차가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에 대한 파장을 잘 기억하고 있으니,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것으로 본다. 기본적으로 주주와 시장이 평가할 일이다. 결국 삼성, 현대차 등 우리나라 대표기업은 이제는 단순히 법만 지킨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시장의 평가를 제대로 받아야 한다. 현대차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설득하느냐에 달려있다.

-삼성의 지배구조 변화에 대한 평가는.

각 그룹마다 사정이 달라 변화의 속도나 내용은 똑같지 않다. 삼성은 상당한 시일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재용 부회장의 대법원 재판이라는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으면 당장 하긴 어려울 것이다. 삼성도 현재의 지배구조 체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렇게 오래 머뭇거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적절한 시일 내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할 것으로 믿는다. 충분히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다.

-삼성도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했는데

삼성에게 필요한 변화는 이사회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다. 삼성의 이사회는 그간 굉장히 폐쇄적이고 획일적이었다. 외부 주주의 이익을 잘 대변할 수 있을지 신뢰가 없었다. 물론 삼성이 이번 주주총회에서 개방성과 다양성을 높였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아무리 훌륭한 사외이사라 하더라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추천이 이뤄졌다. 이사회를 구성하는 과정이 좀 더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 처리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금산분리 차원에서 분리해야 한다(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게 꼭 틀린 말은 아니다. 현대차와 현대캐피탈은 굉장히 밀접한 업무연관성이 있지만,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간의 관계를 꼭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반드시 삼성전자의 지분을 팔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는 경영 판단의 문제다. 규제를 바꿔서 재단할 사안은 아니다.

결국 삼성생명이 고객 돈으로 삼성전자의 지배를 강화하고 악용했다는 지적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두 사업부문에 대한 파이어월(방화벽)이나 최소한 차이니즈월(기업 내 정보 교류를 차단하는 장치)을 둬서 이해상충방지 장치를 어떻게 구축할지에 대해 삼성이 답을 줘야 한다. 물론 삼성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계획을 미리 공개하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는 암묵적인 신호를 보내야 한다. 어떤 시그널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은 삼성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해 결정하고 책임지는 의사결정이 가능한 한 빨리 이뤄져야 한다. 결국은 이재용 부회장의 최종적인 지배력 문제다. 지주회사 방식으로 간다면 최종 지주회사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분율을 얼마나 가지고 갈 것인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

또 대기업집단은 형식적으로 법을 지키는 수준을 넘어 그 프로세스가 정당해야 한다는 인식을 과거보다 훨씬 강하게 해야 한다. 혐의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삼성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송비용을 대납했던 것이 10년 전 일이다. 10년 동안 한국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변했나. 10년 후에는 그에 못지않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결정은 삼성이 해야겠지만, 기준은 향후 10~20년 후 한국사회의 변화라는 미래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 젊은세대의 인식 변화를 예상하고 그 기준에 맞춰 결정해야 한다. 이게 ‘결정과 책임’에 중요한 포인트다. 그런 면에서 삼성이 아쉬운 부분이 많다.

-5대그룹을 만난다고 들었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빅 이벤트가 있어 4월이 될지, 5월이 될지는 시점을 봐야 한다. 5대 그룹에서 범위를 넓힐지도 고민이다. 과거 두 차례 전문경영인과 만남에서는 저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공정위가 (대기업 스스로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니 염두에 두고 의사 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번에 다시 만나면 기업들의 개편방향에 대해 제가 듣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공정위는 업무계획 및 공정거래법 전면개정 내용을 공표하면서 재벌개혁 방향을 알렸다. 올 상반기까지는 현행법 체제아래서 법을 집행하고, 하반기는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을 포함한 재벌 규제제도 개선에 방점을 찍고 있다. 각 그룹에서 생각하는 방향과 현실적인 어려움 등을 들어볼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상법 개정과 관련해 법무부와 조율은. 결단 내릴때다.

상법개정문제는 2013년부터 제기됐다.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법무부가 최종 정리를 하고 있다. 정부안을 따로 낼지 의원발의를 통할지, 국회에 이미 제출된 법률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지 여러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안다.

재벌개혁은 공정거래법만으로 할 수 없고, 상법, 금융법, 세법 등 여러 제도가 함께 아우러질 때 가능하다. 한국 경제가 성공하려면 하나의 법이 아니라 전체 법 체계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조율되느냐에 달렸다. 이런 차원에서 법무부와 협의를 하고 있다.

다만 개정 범위를 어떻게 가져갈지는 당·정·청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최근 의결권을 대리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섀도보팅’ 제도 폐지로 주총이 무산되면서 야당에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재료는 이미 마련돼 있다. 상법 개정을 하더라도 어느 부분을 테이블에 올릴지는 결정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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