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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신과 함께'가 이 시대에 전한 용서와 공감

고규대 기자I 2017.12.25 06:00:00
[이데일리 고규대 문화·레저산업부장] 지난 주말 영화 ‘신과 함께’가 350만 남짓 누적 관객을 기록하면서 연말 흥행신화를 쓰고 있다. 영화는 제주의 신화에서 모티브를 찾은 동명의 원작 웹툰을 토대로 했다. 아이를 구하다 죽음에 이른 소방관 자홍이 사후세계에서 귀인으로 칭송받아 환생을 위한 재판을 받는 과정의 이야기다.

‘신과 함께’는 죽은 후 전생의 업보에 따라 다시 순환한다는 불교적 사후세계관을 토대로 했다.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아온 자홍은 7개의 지옥 재판을 순탄하게 넘기고 환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 하지만 그도 지옥 재판을 거칠 때마다 이승에서 크고 작은 죄를 지었음을 알게 된다. 그 예상을 빗겨갈 때마다 관객은 드라마틱한 반전에 웃기도 울기도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생 크고 작은 죄를 짓고, 7개의 지옥 재판을 받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신의 삶을 찾고 인생을 반추하게 한다. 영화의 막판 천륜 지옥에 이르렀을 때 뜻하지 않은 반전을 맞닥뜨리면서 극장 곳곳에서 훌쩍이는 공감의 눈물이 쏟아진다. 대놓고 눈물을 짜내는 최루성 신파 스토리임에도 희생·사랑·가족 등 보편적 주제에 그만 무장해제당하고 만다.

영화의 부제는 ‘죄와 벌’이다. ‘죄와 벌’이라는 부제는 세계 문학 걸작의 하나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1866년 소설 ‘죄와 벌’을 떠올린다. 그리스도적 사후세계를 토대로 한 소설처럼 영화 ‘죄와 벌’은 죄와, 그 죄에 합당한 벌이 무엇인가 묻는다. 풀기 어려운 문제다. 누구도 자로 잰 듯 답을 내릴 수 없다. 법전에 적은 성문법률로 판단할 수도,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로 해결할 수도 없다. 사람의 해석에 따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변화무쌍한 해석이 가능하다. 성악설, 성선설의 철학적 논리에 따라 벌이 달라질 수도 있다.

영화의 흥행 성공은 어찌 보면 최근 대중의 정서를 잘 읽은 덕분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이슈를 연이어 낳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도 마찬가지다. 하루 100여 건 올라오는 청원 중에 공교롭게 답변된 청원이 모두 죄와 벌에 관계돼 있다. 조두순 출소 반대, 주취감형 폐지 건의, 낙태죄 등 폐지, 청소년 보호법 폐지 등 모두 4건이 그것이다. 29명의 안타까운 주검을 안긴 제천 화재 참상 이후 누가 합당한 책임을 질 것인가 논쟁도 떠올리게 한다. 건물 소유주의 법적 책임인지, 소방관의 초기 대응 실수인지, 심지어 대통령의 정치적 문제인지 별의별 의견이 쏟아진다.

‘죄와 벌’의 김용화 감독은 “영화는 은유의 매체라고 생각한다. 은유를 통해 관객이 충분히 상상하게 하면 된다”고 부제에 대해 평했다. 영화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복수를 말하지 않는다. 죄와 그 죄가 저질러진 과정을 돌아보며 희생·용서·공감을 에둘러 이야기한다. 권선징악의 직접적 스토리 대신 감정이입의 간접적 사색을 유도한다. 어찌 보면 불사(不死)도, 윤회(輪廻)도, 무(無)도 아닌 현재의 모든 순간이 이어져 다시 돌아온다는 영원회귀(永遠回歸)를 말하고 있다. 성탄절을 맞은 오늘, 희망을 찾고 화해의 손길을 건네고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라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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