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갑질횡포 근절’을 목표로 100일간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적발한 6000여명 중 절반 가까운 인원이 ‘블랙컨슈머’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 수사국은 갑질횡포 행위 총 4993건을 적발해 6266명을 검거하고 258명을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갑질횡포가 구조적 요인 때문에 많이 발생하는 만큼 단속을 통해 파악한 제도개선 요구사항 295건도 관련 정부기관에 전달했다.
◇갑질 적발 10명 중 4명은 블랙컨슈머
경찰청에 따르면 유형별로는 이른바 악성 민원인(블랙컨슈머)이 3352명(43.7%)으로 가장 많았다. 구체적인 범죄유형은 사업주 및 종업원에 대한 폭행과 상해(62.6%), 업무방해(24.1%), 재물손괴(6.7%), 갈취·협박(4.4%) 등의 순서다.
블랙컨슈머의 경우 무직자와 일용직 근로자 등 경제적 취약계층이 35%를 차지했다. 회사원(21.1%)과 자영업자(16.5%) 등도 적지 않았다. 피해는 대부분 자영업자와 감정노동자 등이 입었다. 갑질 횡포 피해자의 23.9%가 자영업자였다.
식음료 및 유통업계는 블랙컨슈머가 가장 활개치는 곳이다. 소비자 영향력 큰 만큼 유형이 다양하고 정도도 심하다.
지난 10월 12일 경기 구리의 한 제과점에서는 화가 난 김모(50·여)씨가 큰 소리를 내며 4시간 가량 소란을 피웠다. 김씨는 이 곳에서 산 빵을 먹다가 유리가루에 자신의 이가 빠졌다고 항의하며 주인의 뺨을 6차례 정도 때렸다. 경기 구리서는 상해와 업무방해 혐의로 김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대형마트에서는 절반 이상 먹은 음식을 반품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식음료 업계에서는 있지도 않은 임신부 아내가 음식을 먹고 탈이 났다고 억지를 피워 돈을 요구하는 황당한 사례도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 50대 여성 고객은 1년전에 산 신발의 가죽이 벗겨졌다고 환불을 요구했다”며 “1년을 신고도 전혀 가죽이 벗겨지지 않는 신발은 없다고 설명했지만 막무가내로 소란을 피워 결국 돈을 돌려줬다”고 한숨지었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사회 구성원 누구나 갑으로 돌변할 수 있어 발생하는 게 블랙컨슈머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 우월적 지위 악용해 성폭행·노동착취
이 밖에 갑질횡포 행위는 △직장·단체 내 각종 불법행위(폭행·성폭행·인사비리 등) 1076명(14%) △거래관계 내 우월적 지위 이용한 리베이트 비리 610명(8%) △외국인 및 장애인 근로자 대상 착취와 원청업체의 불공정 거래 347명(4.5%) △공무원·시의원 등 공직비리 324명(4.2%) 등이 있다.
한 여행사 운영자는 성관계를 거부하면 여행일정을 마음대로 취소해버리는 등의 수법으로 여행가이드인 여직원을 압박해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오토바이 배달대행업체에 가출·결손 청소년들을 고용한 뒤 지각 혹은 결근을 하면 벌금을 물리고 둔기로 때린 혐의를 받는 업주도 구속됐다. 협력업체에게 발주조건으로 계약금의 5~10%를 리베이트로 요구해 차명계좌로 받는 수법으로 총 17개 업체로부터 2억 4000만원을 받아챙긴 한 기업 임원도 구속됐다.
13년간 자신의 식당에서 지적장애 3급의 70세 여성에게 일을 시키면서 최저임금보다 적은 매월 30만원의 약속한 급여조차 지급하지 않은 식당업주도 적발됐다.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가 휴가를 가겠다고 하자 주먹으로 얼굴을 수차례 때려 다치게 한 양식장 운영자도 붙잡혔다.
경찰은 또 채권자나 지역신문기자, 아파트 입주민 등 다양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들을 적발했다고 전했다. 경호 경찰관의 멱살을 잡은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도 포함됐다.
갑질횡포 가해자의 89.6%는 남성이었다. 가해자 연령대는 40대(29%)와 50대(28.7%)가 가장 많다. .
원경환 경찰청 수사국장은 “갑질횡포는 내가 상대방보다 우월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발현된 것”이라며 “갑질행위에 대한 원인분석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이번 단속이 갑질문화를 일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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