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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통과로 촉발된 파행정국이 2일 이정현 대표의 단식 중단과 새누리당의 국정감사 복귀 선언으로 정상화됐습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여야의 강대강 대치가 열흘 가까이 지속됐지만 사실 따져보면 승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야는 물론 청와대, 정세균 국회의장 모두가 사실상 패자에 가깝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때 이른 대선 파워게임이 가져온 부작용이었습니다. 여야 모두 밀리면 끝이라며 사생결단으로 맞섰습니다. 여야 정치권이 입에 달고 살았던 협치는 완전히 실종됐습니다. 올오어낫씽의 치킨게임 속에서 마구잡이로 진검을 휘둘렀습니다. 정치적 금도를 넘어선 거친 언어가 난무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김재수 해임 vs 정세균 사퇴’ 여야가 목숨 걸만한 일이었나?
이번 사태의 발단은 김재수 장관의 해임건의안 문제였습니다. 지난달 23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습니다. 김재수 장관의 해임건의안 처리를놓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정세균 국회의장이 정면충돌했습니다. 국회선진화법 탓에 과거와 같은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본회의장은 난장판 그 자체였습니다. 새누리당이 김 장관의 해임안 통과를 막기 위해 국무위원들의 식사시간 보장을 촉구하는 지연전술을 구사하면서 ‘필리밥스터’(무제한 반대토론인 필리버스터+밥)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야3당 공조를 성사시키면서 새누리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해임건의안을 가결시켰습니다.
돌이켜보면 김재수 장관의 해임건의안 처리 여부가 여야가 사실상 열흘 가까이 국회를 마비시킬 만한 문제였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야권은 대선정국의 조기 주도권 장악을 위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표면적으로 는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따져보면 별로 얻은 게 없습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어찌할 수 없었던 야권이 김 장관을 희생양 삼아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견제구를 날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의 수용불가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힘의 논리를 앞세워 여소야대의 위력을 과시한 것일뿐입니다. 더민주의 경우 예상밖의 강경한 태도가 차기 대선에서 외연확대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재수 해임안 정국에서 캐스팅보트를 쥐며 거대 여야 정당의 러브콜을 받았던 국민의당은 막상 파행정국에서는 힘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별다른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세균 국회의장도 시비에 시달렸습니다. 정기국회 개회사 논란에 이어 또다시 정쟁의 중심에 서면서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로 적잖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권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박 대통령은 야당과의 기싸움에서 밀리면 레임덕의 시작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맞섰습니다. 만일 김재수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수용할 경우 야당과 갈등을 빚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물론 지진 부실대응으로 비난을 받아온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제2의 김재수 장관이 되는 정치적 위기를 겪을 수도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때문에 국회에서 통과된 해임건의안의 수용을 거부해 불통 이미지를 심화시켰습니다. 반대로 박 대통령이 야당 단독 처리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국회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해임건의안을 수용했다면 오히려 야권에 역풍이 불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새누리당은 이번 사태로 가장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국감파행 정국에서 ‘북치고 장구치고’ 전면투쟁을 벌였지만 얻은 게 없습니다.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원천무효화, 정세균 국회의장의 의장직 사퇴, 국감 전면 거부와 이정현 대표의 단식 등 초강경 투쟁을 선택했습니다. 특히 정세균 의장의 사퇴를 촉구한 것은 애초 현실성이 없다는 점에서 무리한 요구였습니다. 또 이 대표의 국감복귀 선언에도 의총에서 국감 보이콧을 결정하는 등 자중지란의 모습도 연출했습니다. 결국 출구전략을 전혀 고민하지 않는 초강수 대응으로 명분없는 회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새누리당으로서는 굴욕적입니다.
◇여야, 갈등 불씨는 여전…본질은 대선 파워게임
여야 대치는 김재수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야당 단독 처리 이후 새누리당의 반발과 정세균 의장 사퇴 요구, 박 대통령의 수용불가, 새누리당의 국감 보이콧과 이정현 대표의 단식 등이 이어졌습니다. 갈등의 축은 정세균 vs 정진석 → 박 대통령 vs 야당 → 정세균 vs 이정현으로 변해갔습니다. 이번 사태는 여야 모두에 적잖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여야 대치 국면에서 대화와 타협을 중시했던 협상파들의 목소리도 힘을 얻지 못했습니다. 양측 모두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향후 정국 역시 여야의 강경파가 주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정현 대표의 단식 중단과 새누리당의 국감 복귀로 4일부터 국감 정상화가 이뤄지겠지만 불안한 요소는 한둘이 아닙니다. 새누리당이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강조하며 이른바 정세균방지법 처리에 나서겠다는 게 적잖은 갈등 요인입니다. 또 여야 대치로 우선순위에 밀렸던 미르·K스포츠재단을 둘러썬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이 정국의 핵으로 등장할 경우 여야의 진흙탕 다툼은 또다시 불거질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대선을 앞둔 파워게임 성격이 짙습니다. 박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 모두 복잡한 대선방정식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차기 대선을 겨냥한 여야의 정국주도권 다툼이 사실상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마주보고 브레이크없이 질주하는 기관차마냥 거센 파열음만을 냈습니다. 국감 파행사태는 어찌 보면 조족지혈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충돌이 불보듯 뻔합니다. 여야 갈등에 가계부채, 지진대응와 원전 안전문제, 북핵대응과 사드배치 논란, 조선해운 구조조정 등 주요 현안은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떡 줄 국민은 생각도 않는데 여야 정치권이 대선이라는 김칫국만 너무 마시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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