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공부 잘하고 잠도 푹 잤으면 좋겠죠. 하지만 둘 다 잘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국토교통부 한 관료의 말이다. 정부가 전세난 우려가 커질 때마다 빚 내서 집 사라거나 월세 대출을 해주겠다는 엉뚱한(?) 대책을 내놓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속사정은 이렇다. 정부도 둘 다 잘하고 싶다. 집값은 물가상승률을 약간 밑돌 정도로 완만하게 오르고 전셋값도 잡혔으면 좋겠다. 실질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집 사려는 수요만 꾸준히 유지되면 ‘베스트’로 본단다. 경기 침체 없이도 집값 거품을 조금씩 뺄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그게 안 된다. 전세는 투자자가 남는 집을 사서 세를 놓아야 공급된다.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보고 누군가는 과감히 전세를 끼고 아파트에 베팅해야 한다. 이게 예전에는 통했던 공식이다. 과거엔 집값과 전셋값 차이가 줄면 집 사려는 수요가 늘었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너나없이 전세로 눌러 앉으려고만 한다. 집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이 커진 탓이다.
전셋값을 잡는 확실한 방법은 있다. 정부도 알고 있다. 주택 공급을 확 늘려 집값을 떨어뜨리면 된다. 상식적으로 전셋값은 집값을 넘어설 수 없다. 집값이 바닥을 쳤다는 신뢰가 형성되면 집 사려는 사람도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이다. “대한민국이 지금 세종시처럼 집값, 전셋값 둘 다 떨어진다고 쳐요. 한국 경제가 그 자체로 흔들릴 겁니다. 제일 먼저 다치는 건 자영업자 같은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입니다.”
전세난에 ‘대출받아 집 사라’는 취지의 대책을 마련했던 이 관료가 털어놓는 고충이다.
현재 진행형이자 앞으로도 오랜 기간 이어질 전세난은 새로운 의미의 시장 실패를 보여준다. 다수가 미래의 불확실성을 피해 집을 사지 않겠다는 경제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결과가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의 불행으로 귀결되고 있어서다.
시장의 실패를 정부가 무제한적으로 책임지기는 불가능하다. 시장 참여자 모두 ‘공짜 점심은 없다’는 해묵은 격언을 다시 되새겨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