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10개 중 7개는 휴지통으로
이데일리가 3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4월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지난 5월2일 이후 여야와 정부가 낸 540여건의 법안들(인사청문요청안 등 제외) 중 처리된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특히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여야 모두 처리를 공언했던 세월호 특별법 제정안과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안)과 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처벌법 개정안) 등도 통과되지 않았다. 이들 법안들은 여야 이견이 커 9월 정기국회로 다시 미뤄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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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같은 일부 쟁점법안은 여야 협상테이블에는 오르는 만큼 그나마 사정이 낫다. 하지만 다른 대다수 법안들은 논의조차 안된채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의 한 비례 초선의원은 “특히 초선들이 수십개 이상 법안들을 내도 제대로 검토되는 것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경향은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다. 19대국회(2012년~)에서 현재까지 발의된 전체 법안 1만529건 중 계류중이거나 폐기된 법안들은 7451건(70.7%)이었다. 가결 혹은 부결되거나 병합 심사되는 등 ‘검토’되는 법안들의 비중이 30%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여야 논의를 거쳐 가결된 법안은 1276건으로 12.1%에 그쳤다.
반면 18대국회(2008~2012년)에서는 전체 1만3913건의 법안 중 7220건이 폐기돼 51.9%의 비중을 보였다. 현재 19대국회와 비교하면 20%포인트 가까이 낮은 수치다. 가결 비중도 16.9%로 지금보다 5%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입법실적이 더 좋았다. 17대국회(2004~2008년)에서는 3574건(47.7%)의 법안이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16대국회(2000~2004년)에서는 전체 2507건 중 가결된 법안(948건·37.8%)이 폐기된 법안(880건·35.1%) 보다 더 많았다.
◇“법안발의는 그 자체로 정치쇼로 전락”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권 안팎에서는 의원들의 법안발의 자체가 시류에 편승한 ‘이름 알리기’의 목적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세월호 사고 같은 메가톤급 이슈가 터지면 비슷비슷한 내용의 ‘XX방지법’들이 쏟아지는 게 대표적이다. 여권의 한 보좌관은 “발의건수가 곧 실적으로 평가돼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졸속’ 발의는 스스로 제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19대국회 들어 법안발의는 정치쇼로 전락했다”면서 “입법권자들이 선거를 핑계로 입법 논의를 하지 않는 건 곧 국민들을 속이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휴지통에 버려지는 법안들이 많아질수록 국민들의 혈세가 낭비가 된다는 점도 문제다. 의원의 법안들은 국회 법제실 등의 검토를 거쳐서 발의된다. 정부입법의 경우 관계부처협의→당정협의→입법예고→규제개혁위 심사→법제처 심사→차관·국무회의 심의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발의되기 때문에 예산이 더 많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