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덕 칼럼]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가 또 일을 냈다. 페이스북은 그제 가상현실 기기업체 오큘러스를 20억 달러(2조2000억원)에 사들였다. 바로 한달전 모바일 메신저 와츠앱을 190억 달러(20조원)에 인수한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이다. 저커버그는 “가상현실은 공상과학에서나 통하는 얘기였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한때 그랬다. (가상현실이란)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일을 오큘러스와 함께 시작하겠다”고 인수배경을 설명했다.
가상 현실과 인공지능(AI), 웨어러블 산업은 구글 애플 삼성전자 인텔 소니 등 글로벌 정보통신(IT)기업들이 치열하게 시장 선점전을 펼치는 전장(戰場)이다. 먼저 승리의 깃발을 꼽겠다는 야욕이 글로벌 IT 업체들의 인수·합병(M&A)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페이스북은 2005년부터 46개 기업을 사들이면서 체질과 체형을 바꿔나가고 있다.
글로벌 M&A시장의 진정한 포식자는 구글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98년 창업한 구글은 지난 2001년 이후 지금까지 146곳을 인수했다. 올들어서도 홈오토메이션 업체 네스트(Nest)를 42억 달러에, 인공지능업체 딮마인트테크놀로로지를 6억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2010년이후만 봤을 땐 평균 일주일에 한 곳 이상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구글은 AI관련 기업들을 쓸어모으고 있다. 작년엔 일본 도쿄대 재학생들이 창업한 휴머노이드 개발업체 샤프트(SCHAFT)를 인수했다. 이 벤처기업이 개발한 로봇은 차량에 스스로 승차하고 운전해 현장에 도착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차에서 내려 장애물을 통과하고, 건물 입구의 장애물을 치우고, 건물 문을 열고 진입한다. 안에선 밸브 잠그고, 부품 교체하고….
구글이나 페이스북 모두 세계 최고의 검색엔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플랫폼에 지구촌을 한아름으로 연결하려는 ‘초연결 플랜’을 가동하고 있다. 원하던 원치않던 ‘빅브러더’의 길을 지향하고 있는 모생새다. M&A의 양상이 최근 부상하고 있는 사물인터넷(IoT·사람이 쓰는 여러 기기를 인터넷으로 연결)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두 기업의 M&A 리스트를 보면서 두가지가 떠오른다. 한국 1위기업 삼성전자와 국내 벤처기업의 모습이 도통 존재감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글로벌 IT M&A시장에서 한국기업들은 철저한 소외자다. 50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만 봐도 그렇다. 질과 양면에서 그렇다. 2007년이후 18곳을 인수했지만, 크게 조명받은 게 없다. 젊은 기업 트위터는 벤처기업 29곳을 사들였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시스코는 각각 181건과 208건의 M&A를 진행했다. 또 다른 관찰 포인트는 글로벌 IT기업의 사냥감에 한국 벤처기업이 없다는 점이다. 웹 블로그 소프트웨어업체 TNC가 2008년 구글에 인수됐을뿐 페이스북, MS, 시스코, 트위터 등 쟁쟁한 IT기업의 사냥 리스트 한국 벤처는 없다.
M&A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기술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는 강점이 있다. 게다가 연구·개발(R&D)보다 ‘연결과 개발’(C&D·Connect & Development)이 더 중요해진 시대에 M&A는 산업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이끌어내는 키워드다.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사들여 신사업 분야에 진출하는가하면, 벤처기업이 벤처기업과 합병해 제3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국내기업들은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쓸만한 벤처가 없다. M&A를 할라치면 ‘문어발’이라고 공격한다.”(대기업) “기술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자립할만하면 연구자를 빼간다.”(벤처기업).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란처럼 보이지만, 사고싶은 기업들에게 ‘문어발’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드는게 M&A생태계 선순환고리의 시작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 확실해 사줘야 팔걸 전제로 머리를 싸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M&A는 ‘사자’가 주도는 시장이다. <총괄부국장겸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