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임원 출신인 이민수(47·가명)씨는 임대사업용으로 갖고 있는 서울 행당동 중소형(전용 82㎡) 아파트를 보증금 5000만원, 월 180만원에 월세로 내놓았다. 그런데 넉달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자 얼마 전 월세를 10만원 내리기로 한 것이다. 이씨는 “행당동과 왕십리 일대에 월세 아파트가 너무 많고 월 임대료를 5만~10만원씩 낮추는 곳도 생겨나 어쩔수 없이 값을 깎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수도권 전·월세시장이 심상치 않다. 집값 하락으로 수요가 늘어난 전세시장은 전세 재계약 선호 등으로 공급이 줄면서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다. 반면 월셋값은 하락세가 뚜렷하다. 저금리 영향으로 전세의 월세 전환이 늘면서 공급은 증가했지만,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전셋값 ‘강세’ vs 월셋값 ‘약세’ 뚜렷
22일 부동산 정보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 대비 전셋값은 서울(3.25%)과 수도권(3.37%), 지방(2.5%)이 모두 오르면서 전국 평균 3.05% 상승했다. 서울에서는 강북구가 8.65%로 가장 많이 올랐다. 성동구(6.43%)와 송파구(4.46%)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84㎡형 전셋값은 올해 초 5억2000만~5억3000만원에 거래되다 이달 들어선 5억5000만원으로 2000만~3000만원까지 올랐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문의전화 10통 중 9통은 전세를 찾는 사람일 정도로 전세 쏠림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하지만 전세 물건이 워낙 귀하다보니 집주인들이 전세 재계약할 때 5000만원가량을 높게 불러도 세입자들이 웬만하면 재계약을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반면 리센츠 아파트 전용 84㎡형 월세는 올해 초 보증금 1억원을 기준으로 월 190만~200만원에서 월 170만원으로 최고 15%가 내렸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저금리 기조와 주택 침체 장기화에 따른 전세값 상승으로 ‘반전세’나 보증부 월세의 공급이 많아진 게 월세 하락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과 한국감정원 통계를 봐도 월세 거래량은 지난 2월 3413건에서 지난달 2432건으로 30% 줄고, 가격은 지난달 기준으로 올 들어 0.6%가 떨어졌다. 월세는 공급은 많지만 수요가 없어 가격 하락은 물론 거래량까지 감소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60%선에 근접하면 전세가 매매로 전환된다는 공식도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6.7%로 2002년 11월(56.3%) 이후 최고 수준이지만 시장은 요지부동이다.
◇“임대차 시장 양극화 갈수록 심화”
이 같은 전·월세시장 구조는 비정상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주택 거래가 끊겨 전·월세 수요는 점점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전·월세 전체 물량의 증가 없이 전세만 빠르게 월세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백세시대연구소 부동산팀장은 “전세 물건이 워낙 귀하고 가격도 만만찮다보니 세입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보증부 월세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며 “월세 전환으로 세입자의 가계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의 전·월세 전환율은 6.3% 수준. 시중은행 전세자금대출금리(연 4% 초반)보다 2%포인트가량 높아 월세로 전환하면 세입자가 부담해야 할 몫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올해 하반기에도 ‘전세 강세, 월세 약세’ 현상을 해결할 뚜렷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전세 수요를 줄이거나 공급을 늘릴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함영진 부동산114리서치센터장은 “전세 수요를 줄이기 위해선 매매시장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집값 상승 기대감이 사라져 거의 불가능하다”며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폐지가 지지부진 한 것도 민간 공급 확대를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전세 수요를 매매로 전환할 수 있도록 시장 활성화 대책이 추가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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