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 현장 이탈 전공의들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에서 한발 물러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집단사직 후 한 달 넘게 병원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를 유연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법과 원칙만을 내세워온 정부가 처음으로 융통성을 내보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는 보름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의식한 행보로 비치기도 하지만, 의료개혁도 당정이 보조를 맞춰야 진척시킬 수 있음을 윤 대통령이 인정했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정부의 태도 변경은 의·정 간 대화 복원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렇다고 의료계가 당장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는 등 호응하고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소속 39개 의대 교수들은 예고대로 어제부터 ‘자발적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다. 전공의 이탈 후 과다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과 중환자 집중진료 여력 확보 등을 명분으로 주 52시간 근무와 외래진료 최소화에도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는 새 회장 선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20~22일 1차 투표의 과반 미만 득표 1·2위인 임현택·주수호 후보를 놓고 오늘까지 이틀간 2차 투표를 실시한다. 둘 다 강경파여서 누가 회장이 되든 의협의 비타협적 태도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찬성한다는 사실을 의사들이 외면해서는 안 된다. 또한 정부와 의사들이 강대강 대치만 계속해 환자를 비롯한 국민에게 불편과 피해를 초래하는 상황에 대한 국민적 분노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의사들이 정부의 이번 유화적 제스처를 대화 복귀의 실마리로 삼지 않는다면 더는 그럴 기회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의 운신 공간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일단 전제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야 정부가 양보 카드라도 내놓을 수 있다.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5년간 연 2000 명’에서 ‘10년간 연 1000 명’으로 수정해 속도를 조절하는 방안이 의료계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를 포함한 의·정 간 이견의 합리적 절충에 대해서는 국민도 용납할 수 있다고 본다. 의료개혁은 의·정 간 협의를 토대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함을 의·정 양쪽 다 잊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