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공매도, 단어부터 바꿔야 합니다. ‘롱-숏(상승할 것으로 예상하면 사고,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면 미리 빌려서 파는 전략)’을 일본어로 번역한 단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문제입니다. 없는 것을 판다고 하니 이름부터 잘못된 행위로 낙인찍힌 거죠.”
국내 주식시장에서 공매도가 마치 ‘악당’처럼 여겨지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이름 때문이라는 한 시장 관계자의 주장이다. 공매도(空賣渡). ‘없는 것을 판다’라는 것을 말 그대로 한자어로 바꾼 단어지만, 투자 전략을 설명하기보다 부정적인 인식만을 부각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름을 바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국내에서는 공매도가 ‘주식시장의 적’으로까지 불리다 보니 답답한 시장 참여자들이 이런 생각마저 하는 것이 아닐까.
소문으로만 돌던 공매도 전면 금지가 내년 상반기까지 시행된다. 시장의 예상과 달리 국민의힘과 정부는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공매도 전면 금지를 결정했다. 공매도 제도를 개선할 동안 공매도를 전면 금지해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이유다.
시장에서는 두 가지 걱정을 내놓고 있다. 대외 경제에 나 홀로 소외되는 국내 증시 저평가 상태가 이대로 지속할 수 있다는 것과 시장과 금융당국이 주도해 바꿔나가야 할 제도가 정치권의 표심 얻기에 이용됐다는 점이다.
한시적이지만 공매도 전면 금지로 한국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6월 MSCI는 한국 증시를 선진국 후보로 편입하지 않으며 이유 중 하나로 ‘제한적 공매도’를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MSCI 지수 편입은 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필수 과제로 손꼽힌다. 정부는 이를 위해 외환거래 시간 확대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지만, 이 모든 노력은 공매도 전면 금지 결정으로 물거품이 됐다.
한편에서는 정치권이 표심 얻기에 금융 제도를 이용하며 공매도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기회도 사라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매도는 주가가 과대평가되지 않도록 돕고 유동성도 확대하는 효과를 내는 제도다. 실제로 자본시장연구원이 올해 초 발표한 자료를 보면 코로나19 당시 실시한 공매도 전면 금지로 시장 거래는 위축했고, 주식시장 변동성은 확대했으며 주식 가격 역시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당국은 애초 공매도 전산시스템 도입과 담보 비율과 상환 일원화 등 제도 개선을 통해 공매도가 시장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공매도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을 바꿀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당이 공매도 전면 금지를 개미의 표심 얻기에 이용하며 공매도는 ‘악당’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가게 된 상황이다.
공매도 전면 금지를 통해 개미들은 주가 상승을 기대할지 모른다. 당분간 그 기대가 충족할 수도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매도 전면 금지 후 한동안은 주가 상승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증시가 나쁠 때 내 종목만 계속 오르는 일은 없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돼 코스피가 박스권을 뚫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한다면 단기간 종목이 오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만, 공매도 전면 금지에 대한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MSCI 지수 편입과 코리아 디스카운트(증시 저평가) 해소를 뒤로 미루면서까지 전면 금지를 택했다면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공매도가 앞으로는 우리 증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제대로 된 제도 개선 대책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