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동의 타임머신]`갤노트`..스티브잡스 뒤집은 삼성의 역발상

양희동 기자I 2019.08.10 04:00:00

2010년 갤럭시탭 출시..잡스 "도착시 사망" 악평
다음해 크기 줄이고 펜까지 넣은 '갤노트' 내놔
'폰+태블릿'='패블릿'이란 새로운 개념 만들어
스마트폰 세계 1위와 대화면 패러다임 이끌어

2011년 9월 독일 베를린 ‘IFA 2011’에서 공개한 갤럭시노트 첫번째 제품. (사진=삼성전자)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현재 나오고 있는 7인치 태블릿들은 ‘DOA’(Dead On Arrival·도착시 사망) 운명이 될 것이다. 제조사들은 자신들의 태블릿이 너무 작다는 아픈 교훈을 얻고 내년엔 크기를 키울 것이다”.

애플의 창업주인 고(故)스티브 잡스는 약 9년 전인 2010년 10월, 컨퍼런스콜(다자 간 전화회의)에 직접 나서 당시 삼성전자(005930)의 7인치 태블릿 ‘갤럭시탭’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삼성전자는 그해 6월 전략스마트폰 ‘갤럭시S’를 처음 선보였고, 9월엔 태블릿인 갤럭시탭을 연이어 공개하며 애플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7인치 태블릿은 스마트폰과 경쟁하기엔 너무 크고, 아이패드와 경쟁하기엔 너무 작다”고 지적하며 실패를 단언했습니다.

◇예상 뒤집는 ‘역발성’…大화면 스마트폰 흐름 만들어

다음해인 2011년 9월 1일, 삼성전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 ‘IFA 2011’에서 첫 ‘갤럭시노트’를 공개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7인치도 너무 작다고 했지만 갤럭시노트는 5.3인치 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에 ‘S펜’까지 추가한 형태였습니다. 크기를 줄인 것은 물론 2007년 아이폰 출시 당시 스티브 잡스가 “스타일러(펜)는 필요없다”며 손가락 터치 방식을 도입한 것에 대해 틈새를 노린 역발상이었습니다.

아이폰이 휴대전화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면 갤럭시노트는 ‘폰’(Phone)과 ‘태블릿’(Tablet) 결합한 ‘패블릿(Phablet)’의 개념을 정립한 제품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삼성 갤럭시 언팩 2019’에서 최신 제품인 ‘갤럭시노트10’를 선보였습니다. 첫 등장에선 시장의 우려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열 번째 시리즈까지 출시하며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스마트폰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습니다.

첫 갤럭시노트의 크기였던 5.3인치는 이후 스마트폰의 일반적인 크기로 정착됐습니다. 또 갤럭시노트가 개척한 6인치대는 아이폰까지 합류해 대화면이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갤럭시노트10+(플러스)’는 6.8인치까지 크기를 키워 과거 스티브잡스가 ‘DOA’라고 지적했던 7인치에 근접해졌다는 사실입니다.

갤럭시노트는 최첨단 기술을 처음 접목하는 플래그십의 역할도 해왔습니다. 특히 2016년 8월 출시했던 ‘갤럭시노트7’은 갤럭시S시리즈와 숫자를 맞추기 위해 6을 건너뛰고 출시한 제품으로 홍채 인식 등 혁신 기능을 탑재해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비록 단종 사태로 위기를 겪었지만 삼성전자가 제품 신뢰도와 안정성을 높이는 계기가 됐고, 갤럭시노트 브랜드도 이후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번 갤럭시노트10도 갤럭시 제품 최초로 EUV(극자외선) 기반의 7나노(nm·10억 분의 1m) 공정만으로 양산한 모바일AP를 탑재하는 등 시스템반도체 분야의 혁신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아이폰의 혁신에 깊은 반성…스마트폰 세계 1위로 도약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발간한 저서 ‘초(超)격차’에서 스티브 잡스가 직접 소개했던 2007년 아이폰 첫 출시 행사에 반도체 공급업체 대표 자격으로 초청받은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권오현 회장은 “애플이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산업에 진입하는 것을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우연히 모바일용 반도체가 준비돼 있어 핵심적인 부품 공급자가 되긴 했지만 완제품 자체의 등장을 예측하지 못한 실수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이어 “애플은 당시 통신 사업과 무관한 컴퓨터 회사였고 그래서 애플이 이런 미래 행보도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나의 판단 착오”였다며 “세상은 정말 빛의 속도로 변해가고 있는데 제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전했습니다.

아이폰 출시 후 4년이 흘러 갤럭시노트가 처음 공개된 다음 달인 2011년 10월, 삼성전자는 그해 3분기 실적에서 영업이익이 컨세서스(전망치)를 1조원 가량 상회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습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이 애플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선 덕분이었습니다.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렸던 스티브 잡스는 같은 달 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삼성전자는 애플에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스마트폰 시장 세계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미·중 무역전쟁 속에 지난달부터 시작된 일본의 수출 제재로 삼성전자는 최악의 대외 경영 환경 속에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은 갤럭시노트10 출시 행사에서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해 “3~4개월 후까지 장기화 되면 스마트폰 원재료에 영향이 없을 수 없다”며 “3~4개월 치 부품은 준비돼 있지만, 그 뒤 일은 예측할 수 없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결국 답을 찾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입니다.

삼성 ‘갤럭시 노트10+’ 아우라글로우. (사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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