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까지 나서 ‘양자정보통신포럼’을 만드는 등 양자 산업을 성장동력으로 키우려는 와중에 발생해 안타까움을 키운다.
양자암호통신 국제 표준이 조기 제정되면 가장 혜택을 보는 기업은 기술력이 앞선 SK텔레콤인데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SK텔레콤은 이 사태에 유감을 표하면서 △앞으로도 국제표준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핵심 기술 개발에 집중해 국내외 양자 생태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1일 업계와 학계에 따르면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기통신표준화 부문 스터디 그룹에서는 양자암호통신과 관련, 스터디그룹 13(ITU-T SG-13)과 스터디그룹 17(ITU-T SG-17)이 활동 중이다.
KT가 국내 연구반 반장으로 있는 SG-13은 네트워크 아키텍처 차원에서, SK텔레콤이 주도하는 SG-17은 암호기술 쪽에서 표준을 연구한다.
그런데 6월17일부터 2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ITU-T SG-13 국제회의에서 KT가 주도한, 대한민국 국가표준으로 제안된 양자암호통신 네트워크 프레임워크 권고안 1건이 국제표준(ITU-T Y.3800)으로 예비 승인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ITU 내 양자암호통신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채택된 표준이다.
해당 표준은 KT와 일본의 정보통신연구기구(NICT)가 주도했고, 국내에선 KT, LG유플러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텔레필드, EYL 등 7개 기관이 참여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SK텔레콤이 국제표준 채택을 방해했다. 제네바 회의에 참석했던 최준균 KAIST 교수는 “SK텔레콤이 표준 채택을 방해하면서 ITU 사무국이 변호사까지 고용해 대기할 정도였다”면서 “2주 내내 반대하다 마지막 순간 ‘반대’를 지워달라고 해서 지웠다”고 말했다.
그는 “KT는 9개의 기고문을 냈고, LG유플러스는 2개를 냈다. SK텔레콤도 해당 표준에 6개의 기고문을 냈지만 대부분 반대 내용이었다”면서 “SK텔레콤이 제기한 기술과 논리를 다 반영해줬지만 ITU 회의장에서도 영국과 함께 반대했다”고 비판했다.
ITU-T SG-13는 SK텔레콤이 제안한 △양자암호통신 네트워크와 기존 통신 네트워크 간 연결 시 암호화 키 요청과 전달 신뢰도 측면 고려 사항 △양자암호통신 장비의 재기동 시 자동 운영 관련 내용 등을 수용했다. 다만, 국내 연구반 측은 부록(Appendix)으로 첨부했다는 입장이고, SK텔레콤 측은 표준 자체에 반영됐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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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주도한 네트워크 분야 양자암호통신 기술은 결국 특정 국가의 반대 없이 국제표준으로 예비승인된 만큼, 최종 표준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SK텔레콤은 왜 국내 대표단의 제지를 받으면서까지 반대했을까. 최 교수는 “국제 표준화가 빨라지면 기술력에서 앞선 SK텔레콤이 가장 큰 혜택을 볼 텐데 반대한 것은 해당 표준을 KT가 주도했기 때문이다. 기술이슈가 아닌 언론플레이로 몰고 가려 해 아쉽다”고 말했다. ITU-T 13의 표준개발 총괄 의장(Working party 1 Chairman)은 김형수 KT 박사이고, 전임 의장은 최준균 교수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암호 기술쪽 SG-17과 네트워크쪽 SG-13의 표준 간 연구 호환성 때문에 반대 의견과 함께 기술을 제안했다”면서도 “국제회의에서 국익을 저해할 수 있게 비친 부분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SK텔레콤은 해당 직원에 주의를 줬고 제네바 회의 막판에 반대 의사를 접은 것으로 확인됐다.
◇양자암호통신 기술력 앞선 SKT..국회 주도 포럼에서 국내 표준 갈등 해소해야
SK텔레콤은 2011년 국내 최초로 양자기술연구소(퀀텀테크랩)을 만든 뒤, 지난해 700억원에 스위스 양자암호통신 원천기술기업 IDQ를 인수하는 등 가장 많이 투자했다.
전 세계에서 양자암호통신 관련 암호기술의 국제표준화 과제를 4건 이상 수행하는 유일한 기업으로, 암호기술 분야인 ITU-T SG-17에서 △양자키 분배 △양자난수발생기 등 관련 4개 과제를 수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이 국내 기업중 양자암호통신 관련 투자나 기술력에서 앞선 건 사실이나 독식할 수는 없다. 이번 사태를 거울 삼아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국내 기업간 협업이 활성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국회에서 출범한 ‘양자정보통신포럼’ 창립식에서 김명준 ETRI 원장은 “지금껏 출연연 등에서 양자정보통신 관련 연구를 해왔는데 2년 전 예비타당성조사 양자 과제에 대해 의견 일치가 안 돼 1년의 시간을 허비했다”며 “양자정보통신포럼에서는 표준에 관심을 갖고 국제 표준화 활동을 추진해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