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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잔뜩 움츠렸다. 투자는 미루고, 보유 자산을 팔아 빚을 갚았다. 전형적인 불황형 경영이다. 기업이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도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조짐을 보이던 기업 투자 부진은 최근 들어 더 나빠지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면서 수출이 6개월 연속 감소하고 경상수지가 7년만에 적자를 기록하는 등 곳곳에서 위험신호를 알리는 경제지표들이 나오면서 기업들의 투자심리는 다시 얼어붙었다.
◇투자 줄이고, 자산 매각해 빚 갚는 기업들
지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4%로 주저앉은 주요 원인은 기업들의 설비투자 부진 영향이 컸다.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기계류와 운송장비부문의 투자 감소로 설비투자는 지난 1분기 -9.1%로 주저앉았다. GDP 성장기여도에서 설비투자가 마이너스 0.8%포인트로 전 항목 가운데 가장 낮았다. 설비투자 감소가 GDP 성장을 끌어내렸단 얘기다.
이같은 기업들의 투자 부진은 지난해부터 본격화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18년 기업경영분석’을 보면 지난해 외부감사대상 비금융 영리법인기업의 총자산증가율(5.5→3.7%)은 전년보다 하락하면서 성장성이 위축된 반면, 부채비율(95.7→91.5%) 및 차입금의존도(26.0→25.6%)가 낮아지며 재무 안정성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업의 재무 안정성이 개선한 것을 긍정적 지표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경기 부진으로 영업이익이 줄자, 투자를 줄이고 단기자산을 처분해 빚을 상환한 결과여서다. 영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줄어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줄어드는 와중에, 자본을 조달하고 상환하는 재무활동 현금흐름은 순유출로 전환했다. 벌이가 신통찮자 이자비용이라도 줄이려고 투자는 미루고 자산까지 팔아 빚을 줄였다는 얘기다.
지난해 외감법인의 영업이익은 전년 7조3000억원에서 6조9000억원으로 5.4% 감소했다. 이에 업체당 영업활동 현금 유입은 평균 89억원에서 지난해 86억원 줄었다. 자본 조달보다 부채 상환이 더 많아 재무활동 현금흐름은 업체당 4억원에서 -5억원 순유출했다. 투자 지출은 87억원에서 84억원으로 줄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기업들이 자산을 팔아 빚을 갚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건설업체들을 중심으로 단기 자산 매각과 부채 상환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경기 둔화에 정부정책은 안보여…기업들 독자생존
이같은 기업들 투자 부진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악화로 경제 둔화 조짐이 뚜렷해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수출 감소세가 6개월 연속 이어지면서 지난 4월 83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온 경상수지가 7년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상품수지는 전년 동월대비 96억2000만달러에서 56억7000만달러로 줄었다. 상품수지가 부진한 것은 수출이 둔화해서다. 4월 수출은 483억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6.2% 쪼그라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부터 미ㆍ중 무역분쟁 다시 격화하면서 미약하게나마 회복했던 기업체감경기도 다시 얼어붙고 있다.
전산업 업황실적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지난해부터 하향 추세를 그리다 올 2월 저점을 찍고 3월부터 반등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5월 미·중 무역분쟁 여파 등으로 다시 내렸다. 전체 산업의 업황 BSI는 73으로 지난달보다 1포인트 하락했고, 6월 전산업 업황 전망은 전달 전망보다 무려 4포인트나 내린 73을 기록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출 부진이 해소되지 못하면 경제성장률 부진은 물론 국민소득에도 악영향을 미쳐 내수 소비 회복에도 부담이 된다”며 “하반기 회복을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투자를 독려할만한 정부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은 독자적으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