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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외환보유액을 열심히 쌓아둡니다. 외환보유액은 대한민국 정부가 자기 명의로 가지고 있는 달러 비상금입니다. 현재 4055억달러가 넘습니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7년과 비교하면 100배 이상 많습니다.
외환보유액이 많을수록 안전하지만, 무작정 계속 늘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도 비용이 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동네 소방서마다 100명씩 소방관을 둔다고 생각해보세요. 불이 날 때마다 100명을 한꺼번에 투입할 수 있으니 든든하긴 하겠습니다만, 100명의 소방관을 유지하려면 월급도 많이 들고 소방서도 그만큼 커야 합니다.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지요.
외환보유액도 마찬가지입니다. 4000억달러면 우리 돈을 400조원이 넘는 돈입니다. 이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어디선가 빌려온 돈이 많습니다. 이자를 줘야 합니다. ‘한국은행이 원화를 찍어내고 그 돈을 달러로 바꿔오면 공짜로 달러를 모을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것도 공짜는 아닙니다. 원화를 자꾸 내다 팔면 외환시장에서 원화 값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외환보유액은 무조건 늘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한 아이디어가 ‘마이너스 통장’입니다. 어차피 비상시를 대비한 달러인데 굳이 내 통장에 그 많은 현금을 모두 쌓아둘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 빌려 올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두어도 크게 걱정할 일이 없어진다는 논리지요.
‘통화스와프’는 마이너스 통장과 비슷한 겁니다. 두 나라 간에 맺는 통화스와프는 서로 돈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언제든 자국의 화폐를 빌려주기로 평소에 약속해놓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캐나다, 스위스, 중국, 아랍에미리트, 말레이시아, 호주, 인도네시아와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습니다.
굳이 마을마다 100명씩 소방관을 두지 말고, 옆 동네와 계약을 맺어서 불이 나면 서로 소방관을 보내주기로 약속을 한 셈이지요. 그럼 비용은 줄고 효과는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자간 통화스와프는 서로 빌려주고 받는 돈이 각국의 자국 통화입니다. 외환위기는 달러가 부족한 상황인데, 당장 빌려 올 수 있는 돈이 캐나다달러, 스위스프랑, 중국위안, 인도네시아루피아 등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돈을 외환시장에서 달러로 바꾸면 되겠지만, 단계를 더 거쳐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기도 하고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닙니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M)’는 자국 통화가 아니라 달러를 서로 빌려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게다가 두 나라가 맺는 양자간 통화스와프가 아니라 여러 나라가 한꺼번에 맺은 다자간 통화스와프입니다. 여러 집들이 공동으로 약속을 하고 일손이 부족할 때 서로 도와주는 품앗이와 비슷한 거라고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지난 2010년부터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과 한국과 중국, 일본이 참여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가 발효됐습니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협정에 체결돼 이름을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로 부릅니다. 참여한 나라들 중에서 갑자기 달러가 부족해지게 되면 각국이 약속한 달러를 서로 빌려주기로 한 협정입니다. 한국은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통해 최대 384억달러까지 빌려 올 수 있습니다.
그동안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빌려주는 기간이 너무 짧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한번 빌릴 때마다 기한이 1년인데, 최대 두번 연장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지원 기한을 무기한 연장할 수 있도록 협정의 내용을 바꿨습니다. 3년 내에 무조건 갚아야 하던 마이너스 통장이 끝없이 상환 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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