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치는 현대판 베렝거]카톡부터 매크로까지…진화하는 증권범죄

문승관 기자I 2019.03.18 05:30:01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문승관 기자] 지난 2014년 평소 주식투자에 관심이 많았던 주부 권 모씨는 지인이었던 최 모씨로부터 에듀컴퍼니와 판타지오가 합병 추진 중이라는 정보를 듣게 된다. 권씨는 한 인터넷 주식 카페 회원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들어가 “300% 수익을 올리 수 있는 정보가 있으니 알고 싶다면 ‘개톡(개인톡)’을 달라”며 유인했다. 권씨는 보안을 이유로 네이버 밴드에 주식방을 열고 운영했다. 금융당국 조사가 나오면 ‘폭파(삭제)’해 흔적을 쉽게 없앨 수 있어서다. 권씨는 실제로 ‘동 밴드2’, ‘동 밴드33’ 등을 만드는 등 증거 인멸을 해왔던 것이 조사결과 드러났다. 그해 5~7월까지 권씨와 회원들은 합병 재료로 큰 시세 차익을 얻었다. 최초 정보를 제공한 최씨는 자신과 친형이 보유한 판타지오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권씨에게 허위정보를 흘렸다. 그해 9~12월까지 권씨는 회원들과 2차 시세조종에 가담했고 큰 손실을 봤다. 불만을 품은 한 회원이 금감원에 신고했고 권씨와 최씨 등은 조사 후 검찰로 넘겨졌다.

◇카톡·밴드 기본…매크로 프로그램 신종 수법까지

최근 불공정거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갈수록 첨단화·다양화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자메시지, 증권방송, 인터넷커뮤니티 등을 이용해 투자자 심리를 현혹하는 수법이 등장했다. 점차 지능화·조직화하면서 적발 자체가 쉽지 않다.

실제로 적발률은 오히려 전년 대비 3.0%포인트 하락한 9.9%를 기록했다. 교묘해지는 불법 영업행위로 단속이 어려워져서다. 금감원 자산운용검사국 관계자는 “유사투자자문업자의 영업방식이 교묘해지면서 점검만으로 불법혐의를 적발하기가 어려워지는 추세”라며 “유료서비스에 직접 가입해 구체적인 혐의사항을 확인하는 암행점검의 적발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주식 시세를 조종 수십억 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일당이 검거됐다. 이들은 초당 1∼10주 매매를 반복해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보여 투자자를 유인하는 수법으로 시세 상승을 노렸다. 매크로는 마우스나 키보드로 여러 번 반복해야 할 동작을 클릭 한 번으로 자동 실행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일당은 지난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주식시장 상장 76개사의 주식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시세를 조종한 후 39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이 과정에 차명계좌 81개와 아르바이트생이 동원됐다. 이들은 금융당국의 추적을 피하고자 주문장소를 수시로 변경하고 현금으로 입출금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솜방망이 처벌에 재범률 높아…다양한 제재 수단 필요

지난 2013년 10월 CJ E&M 소속의 기업홍보(IR)팀은 3분기 실적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하자 주가 연착륙 등을 목적으로 영업이익이 100억원 미만이라는 정보를 애널리스트에게 제공했고 4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다시 이 정보를 11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에게 전달해 약 365억원의 관련 주식을 매도하도록 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애널리스트와 CJ E&M 직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1년여가 지난 2016년1월 1심 판결에서 CJ E&M 직원들에게 무죄가 선고되고 애널리스트 한 명에게만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CJ E&M 사건은 불공정 거래가 분명함에도 형사적 처벌에는 이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실제로 자본시장연구원이 조사한 결과 ‘자본시장의 공정성 침해 범죄 양형 기준’에 따라 이득액 50억원을 기준으로 최고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지만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191건의 사건 중 실형 선고는 34%에 불과했다. 최근 3년간 미공개정보 혐의자에 대한 기소율도 50%에 미만에 머물고 있다.

형사처벌을 해도 워낙 불공정거래를 통해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이 크다 보니 유혹을 쉽게 물리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증권가에서는 몇년 형만 살고 나오면 평생 먹고 살고도 남을 돈이 생기는데 이를 마다할 사람이 있겠냐는 소리도 나온다.

실제 내부자의 내부정보를 이용한 증권 범죄는 늘고 있다. 금감원이 지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조사한 결과 이 기간에 시세조종 등 주요 불공정거래자의 재범률은 평균 16%이고 2회 이상 위반자 116명을 적발했다. 3회 이상도 32명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전력자들이 다시 증권시장으로 돌아와 일명 ‘바지사장’인 대리인을 내세워 부실기업을 인수한 후 깡통기업으로 전락시키는 고질적인 불공정거래를 뿌리 뽑지 못하고 있다. 상장사 대주주나 임원 등이 우월적 지위에서 취득한 내부정보를 이용해 자기 주머니를 불리는 사례도 여전하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형사제재만 가능한 현재의 체제하에서는 범죄의 발생시점과 이에 대한 형사 처벌의 결정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처벌의 수준도 높지 않다”며 “같은 회사를 대상으로 한 불공정거래 행위가 재발하는 등 형사제재가 갖는 예방적 효과가 낮다”고 덧붙였다.

자본시장 신뢰의 빠른 회복과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 형사제재와 더불어 이익을 적시에 환수하고 징벌적 성격을 가진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의 다양한 행정제재 수단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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