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회전목마를 보는 듯하다. 대한항공 오너가(家) 3세 조현아 전(前) 부사장이 기내 땅공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항공기를 되돌린 후 관련 승무원을 내리게 한 ‘땅콩 회항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대림산업 오너가 3세 이해욱 부회장이 구설수의 중심에 섰다. 이해욱 부회장은 자신의 운전기사를 상습 폭행하고 폭언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대림산업은 최근 고용노동부의 ‘특별 근로감독’ 대상으로 지정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만식 몽고식품 전 명예회장은 올해 초 수행 운전기사를 폭행해 지난달 검찰에 송치되는 신세가 됐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일부 기업 총수들의 ‘갑질’ 논란이다. 한국경제호(號)를 이끄는 기업인들의 도덕률이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느냐는 절망감에 빠질 지경이다.
문득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미국 갑부 워런 버핏이 떠오른다. 버핏은 재산이 608억달러, 우리 돈으로 70조원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돈이 많다. 재산이 이 정도면 갑질의 유혹을 느낄만 할 것이다. 또한 초대형 정원이 딸린 호화주택에 살고 전용기를 자가용처럼 타며 화려한 파티에 돈을 흥청망청 쓰는 삶을 살 것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버핏은 1958년에 3만1500달러(약 3600만원)에 구입한 낡은 집에서 50년 넘게 살고 있다. 그는 또 운전기사를 따로 두지 않고 출시한 지 15년이 된 2001년식 중고 링컨 타운카를 손수 몰아 자신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 본사로 출근한다. 이발요금은 12달러(약 1만4000원)이상 지불하지 않는다. 의외로 소탈한 세계적 갑부 모습에 머리를 갸웃거릴 정도다. 궁상을 떠는 것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검소하고 소탈한 버핏이 돈을 ‘펑펑’ 쓰는 유일한 것은 기부다. 그는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지난해에만 3조원이 넘는 주식을 사회에 내놓으며 이를 실천했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국내 기업총수들도 버핏처럼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야 한다고 등을 떠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버핏 사례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은 명쾌하다. 기업은 하나의 유기체, 즉 생명체라는 점이다. 기업은 치밀하고 조직적이며 투입과 산출이라는 기본적 기능을 갖춘 측면에서 생명체와 유사하다. 이에 따라 기업 총수는 갑질이나 전행을 일삼기 보다는 시장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적응 능력과 도덕률을 보여줘야 한다. 가장 강력하거나 지적인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생존한다고 진화론자 찰스 다윈이 설파하지 않았는가.
국내 대기업 1~2세대들은 한국경제 초석을 닦은 주인공이다. 1세대가 불굴의 의지로 기업을 일으켜 2세대가 사업 영토를 넓혔다. 1~2세대가 피땀으로 일궈낸 기업은 해외 유학을 통해 얻은 국제적 감각과 선진 경영기업으로 무장한 3~4세대가 발전시켜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안고 있다. 이들 3~4세대들은 기업가정신과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을 통해 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무를 실천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반(反)기업정서에 대한 1차 책임이 일부 기업 총수에게 있는 만큼 신세대 대기업 자녀들은 이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13~17세기 피렌체공화국에서 340여년동안 부와 명예를 누리며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운 명문 메디치(Medici)가문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된 원인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못한 오만한 후손 탓이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