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시대 '좀비' 처지 된 알뜰주유소..편법운영에도 속수무책

성문재 기자I 2016.01.21 05:00:00

가격 차이 70~80원에서 30원대로 축소
주유소 숫자 제자리..1300개 목표 역부족
의무구매 안지키고 현물물량 매입 다반사
"소비자들 실익 못 느껴..좀비 상태 이어질 것"

[이데일리 성문재 최선 기자] 유례없는 저유가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정제마진이 개선된 정유사들은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대하고 있지만 제품 가격이 떨어진 주유소업계는 울상을 짓고 있다. 특히 고유가 시대에 해결사로 나타난 알뜰주유소는 최근 경쟁력을 잃고 좌초 위기에 빠졌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에 진입하고 국내 휘발유 가격이 지난 2009년 1월 이후 7년만에 ℓ당 1200원대를 기록하는 초(超)저유가 시대를 맞아 알뜰주유소의 경쟁력이 크게 약해졌다.

지난 2011년 12월 출범 이후 기존 일반 주유소 대비 ℓ당 70~80원 정도 저렴한 알뜰주유소와 일반 주유소 간 가격 차이는 작년 평균 40원대로 줄어든 데 이어 올초에는 30원대로 좁혀졌다. 굳이 알뜰주유소를 찾아 먼길을 돌아갈 만큼의 메리트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특히 정유사들이 카드사들과 함께 협력해 진행하는 할인 마케팅을 활용할 경우 알뜰주유소보다 정유사 간판을 달고 있는 일반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것이 더 저렴해졌다. 알뜰주유소 역시 신용카드사와 제휴를 맺고 있지만 SK에너지(096770),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S-OIL(010950)) 등 정유 4사와 비교하면 제휴카드 종류나 할인폭이 미약하다. 신용카드 시장 상위 5개사 중 알뜰주유소와 제휴 중인 곳은 신한카드가 유일하다.

정유사별 신용카드 제휴 현황(자료: 각사)
급증하던 알뜰주유소 숫자는 업계 상황을 반영하며 정체기를 걷고 있다. 출범 1년만에 800개를 돌파하고 이듬해 1000개를 넘어섰던 알뜰주유소 숫자는 2014년 1136개를 채운 뒤 제자리 걸음하며 지난 1년간 7개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정부는 애초 알뜰주유소를 2015년까지 1300개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농협이나 도로공사가 운영하는 알뜰주유소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으로 석유공사 관리 하에 있는 자영알뜰주유소는 최근 심한 부침을 겪고 있다.

한국자영알뜰주유소협회 관계자는 “품질을 까다롭게 심사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있는 업소들이 상당수 퇴출됐다”며 “지난 1년간 20곳 정도가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알뜰주유소 운영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편법 운영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자영알뜰주유소 가입 시 판매물량의 50% 이상을 정부의 공동구매 물량으로 받아야 하는 계약을 체결하지만 알뜰주유소 업주 가운데 이같은 조항을 지키지 않는 곳이 적지 않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중국 수출량이 줄어들면서 국내 정유사들의 현물 물량이 넘쳐나자 정유사와 알뜰주유소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때문이다. 정유사로서는 저렴한 값이라도 남는 물량을 알뜰주유소에 현물 판매하는 것이 이익이고 알뜰주유소는 공동구매 가격보다 싼 값에 기름을 사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50% 의무구매 조항이 계약서에 명시돼있긴 하지만 위반시 패널티를 받는 경우는 없다. 이를 강제할 경우 알뜰주유소 신규 가입은커녕 이탈 업소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저유가 장기화로 알뜰 주유소 정책을 추진할 동력이 없어진 가운데 소비자들도 알뜰주유소의 실익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며 “중단할 수는 없을 것이고 늘리기도 어려워 ‘좀비’같은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전국 알뜰주유소 숫자 추이(단위: 개, 자료: 한국석유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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