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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수요는 넘치지만 아파트 전세는 씨가 말랐다. 금리 인하 여파로 전세 물건을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초저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전세의 월세 전환이 빨라지고 있다”며 “기준금리 인하는 가뜩이나 심한 전세난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고 말했다.
전세 품귀 현상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은 부동산 거래시장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공인중개사들이다. 요즘 부동산 중개업소에선 전세 물건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중개사 개인의 친분을 동원해야 하는 것은 물론, 울며 겨자먹기로 집주인이 내야 할 중개보수(옛 중개수수료)를 깎아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양천구 목동 D공인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이 중개업소, 저 중개업소 다니면서 ‘옆집은 수수료를 얼마까지 낮춰주겠다고 하더라’며 흡사 입찰 경쟁을 부추긴다”며 “집주인들의 ‘갑질’이 꼴불견이지만, 물건을 하나라도 확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84.98㎡짜리 아파트 전셋값은 8억 7000만원 선으로 한 달 새 7000만원 뛰었다. 서초구 잠원동 동아아파트 전용 59.8㎡형도 4억 75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보름동안 2500만원 올랐다.
전셋값이 치솟으면서 전세 세입자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판교신도시 삼평동에 사는 김수정(여·47)씨는 “집주인이 월세로 돌리겠다고 해 다른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두 달째 전세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녀 교육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도 힘들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집주인 우위의 시장 상황이다 보니 집을 아예 보지도 않고 전세 계약을 결정해야 하는 ‘묻지마 계약’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잠실동 D공인 관계자는 “요즘 강남 일대에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 공포가 커지자 집 방문을 거부하는 집주인도 있다”며 “이런 집은 사진만 보고 계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수도권 빌라(다세대·연립주택)와 단독주택 전셋값도 상승세다. 아파트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이들 주택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어서다. 한국감정원 통계를 보면 지난달 서울·수도권 빌라 전셋값은 0.25%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전셋값이 0.02%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서울지역 단독주택 전셋값도 지난해 9월 상승세로 전환한 이후 최근까지 지속적인 오름세를 타고 있다. 강동구 고덕동 삼성공인 이영분 대표는 “재건축 이주와 아파트 전세 물건 부족 등으로 빌라나 단독주택을 찾는 세입자들이 부쩍 많아졌다”며 “방 2개짜리 36㎡ 단독주택(2층) 전세도 최근 3개월 새 2000만원 가까이 올랐다”고 전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 센터장은 “금리 인하로 전세의 월세 전환 속도가 더욱 빨라져 서민 주거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며 “월세 전환 속도 조정과 함께 전세 감소 현상을 막을 대책 마련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