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 법률약칭, 알기 쉽게 바꾼다

편집부 기자I 2014.02.21 07:00:00

황상철 법제처 차장

[황상철 법제처 차장] “‘화평법’ 규제 대폭 완화”, “탈많은 ‘화관법’ 제재 수준 낮춘다.” 화학물질의 규제와 관련하여 흔히 볼 수 있는 법률 약칭과 관련된 기사 제목들이다. 그런데 약칭만 봐서는 법률명을 짐작하기 힘들다. 위 법률들의 정식 명칭은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화학물질관리법’이다.

1300여 건 가량의 현행 법률 중 과반수가 10자가 넘을 정도로 길다 보니 신문기사에서는 정식 명칭보다는 짧게 줄인 약칭을 흔히 쓴다. 어차피 약칭을 쓸 수밖에 없다면 약칭은 가능한 짧은 단어로 만들되 법률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신문기사에서 약칭은 주요 단어의 첫 자를 따서 세 글자 정도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만든 약칭은 원래 법률명을 짐작하기 힘든 경우가 많고, 특히 약칭이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단어와 같을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전적으로 ‘화평(和平)’은 ‘화목하고 평온함’을 뜻하는 말이고, ‘화관(花冠)’은 ‘아름답게 장식한 관’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화평법이나 화관법은 이러한 의미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주요 단어의 첫 자만 따서 약칭을 하는 경우에는 법률명을 짐작하기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스마트폰 보조금과 관련한 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통법’의 정식 명칭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로 단어의 첫 자만 따서 만든 것도 아니어서 정식 명칭을 짐작하기도 힘들다.

이처럼 약칭을 만드는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생기는 “알기 힘든 약칭”의 문제는 중앙행정기관이나 법원에서 작성하는 문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법원에서는 ‘공익사업법’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에서는 ‘토지보상법’을 쓰는 경우가 흔하다. 이처럼 하나의 법률에 약칭이 2개 이상 있으면 공익사업법과 토지보상법이 서로 다른 법률인 것처럼 혼동할 수도 있다.

하나의 약칭에 2개의 법률이 있는 경우도 있다. ‘공정법’을 법원에서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약칭으로 쓰기도 하지만, 정부나 언론에서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의 약칭으로 쓰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경우는 2개의 법률을 하나로 착각하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법률명의 약칭을 그 기관마다 일정한 기준이 없이 사용하거나 지나치게 줄여 사용하는 경우, 일반 국민들이 정확한 법률명을 인식하는데 어려움을 주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법률명의 약칭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만들고 이 기준에 따른 약칭을 쓸 수 있도록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비 작업은 국가법령정보의 관리ㆍ제공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법제처를 중심으로 수행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이를 위해 2월 중에 법조인, 국어학자, 언론 기관 종사자 등 다양한 관계자들로 법률 제명 약칭을 통일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ㆍ운영할 계획이다.

일단 위원회가 구성되면, 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위원회에서 약칭 통일을 위한 기준과 그 기준에 따른 약칭을 만들고 관련 기관에 권고할 예정이다. 이를 통하여 “알기 쉬운 법령”에 이은 “알기 쉬운 약칭”으로 일반 국민들이 법률에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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