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가은 기자] 일주일 용돈이 5000원이었던 어린 시절, 침대 구석에 온갖 만화와 소설책을 숨겨놨었다. 동네 책방에서 각종 판타지물을 부모님 몰래 읽기 위해서다. 당시 선생님의 수업 내용을 한 귀로 흘리며 머릿속으로는 인간 세상을 파괴하는 괴물들과 초능력을 쓰며 싸우는 상상을 하는 건 나만의 은밀한 취미였다.
교복을 입은 후에는 이 같은 취미 생활이 두 배로 즐거워졌다. 철없는 상상을 그대로 그려낸 웹툰 ‘트레이스’가 연재됐기 때문이다. 14살이었던 기자는 트레이스와 함께 청소년기를 보냈다. 30대가 된 지금도 트레이스는 연재되고 있다. 끊임없이 작품의 세계관을 넓히고 있는 네스티캣 작가는 최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17년간 한 작품을 그릴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독자’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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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연재를 시작했을 때 몇몇이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독자분들의 악플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트레이스를 사랑해 주시는 팬들이 생기면서 악플도 점점 줄어들게 됐죠. 항상 저를 살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은 팬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독자분들이 없었다면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을 겁니다. 살면서 연재와는 별개로 정말 많은 힘든 일들이 일어나고 또 버티기 힘들다고 느꼈었는데요, 그럴 때마다 독자님들이 남겨주시는 댓글들을 보면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댓글 하나하나에 힘을 내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릴 때도 많습니다. 모두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트레이스의 세계관이 초기 ‘트러블’과 ‘트레이스’ 간의 대립을 넘어 점점 더 방대해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일까요.
트레이스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구상해온 작품인데요. 트레이스의 큰 줄기는 그 때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목표는 트레이스를 평생 그리는 것이지만, 최근 들어서 그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레이스를 연재하는 동안 웹툰 시장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독자들의 눈높이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트레이스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연재한 이유도 앞으로 변화할 시대를 생각해서였죠. 에피소드마다 분위기를 바꾸며 그때의 스타일에 맞게 변화시키는 게 쉽지 않긴 합니다. 평생 그리겠다는 다짐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능력 닿는 데까지 노력할 생각입니다.
△평소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영감은 영화에서 많이 얻고 있습니다. 저도 좀 의아한 부분인데 액션 영화나 판타지 영화보다는 현대물에서 영감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 고전으로는 히치콕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연기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고 있죠. 타고난 마스크와 신들린 듯한 표정 연기를 보면 거기에서 캐릭터의 영감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스토리를 짜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점은 오로지 재미 하나입니다. 제가 시나리오 작법서를 보거나 따로 시나리오 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가 어떤 형식에 갇히면 안된다는 강박 때문인데요. 어떤 장르로 어떤 감정을 전달하든 재미가 우선이라는 생각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생각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 만들면서 누구보다 제가 재밌게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트레이스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편은 무엇인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거지 편과 마지막 날 편입니다. 김윤성이 트레이스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 에피소드들이었는데요. 특히 거지 편을 그릴 당시에는 저 역시 김윤성에 가장 많이 몰입된 상태에서 그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고 기억해 주시는 에피소드이기도 하고요.
마지막 날 편은 그리다가 정말 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힘들게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마감을 한 회 한 회 할 때마다 거의 기절할 정도로 쓰러져 잠이 들었었습니다. 일어나서는 씻을 시간도 없이 또 바로 작업을 했었고요. 그러면서 분량은 더 많이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많이 무리를 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그런 만큼 완결 후 뿌듯했던 기억도 있네요.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나 가치가 있으십니까.
저는 제 작품을 통해서 독자 분들이 힘을 얻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 역시 독자님들 덕분에 힘을 얻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보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예전에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셨던 분이 제 작품을 보고 생각을 바꾸셨다는 글을 봤었습니다. 수많은 감정이 교차되는 순간이었고 앞으로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독자분들이 없이는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어떻게든 독자 분들이 보시고 힘을 얻고 살아가실 수 있는 작품들을 하고 싶습니다.
△과거 트레이스 외에도 ‘외발로 살다’나 ‘장마’ 등 무협, 공포, 로맨스 장르도 연재하셨었는데 현재 계획 중이신 신작이 있으신지요.
장르에 대한 욕심은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도깨비, 트레이스, 장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사랑해, 외발로 살다 등 연속으로 다른 장르로 연재했던 것도 장르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로맨스, 스릴러, 판타지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이 준비돼 있는데요. 트레이스를 장기 연재하다 보니 아직 그리지 못한 작품들이 10개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그림 작가님과 합작도 하고 개인작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외발로 살다는 시즌2를 몇년 전부터 구상해둔 상태였습니다. 지금도 기회만 되면 바로 연재하고 싶을 정도로 욕심이 많이 납니다. 길도와 호국의 새로운 모습들을 빨리 보여드리고 싶네요.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실까요.
친한 친구 같은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간혹 맘에 안 들기도 하고 꼴 보기 싫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항상 옆에 있어주는 그런 편한 친구 같은 작가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독자님들께는 항상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공지를 올릴 때마다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지만 몇 번을 말씀드려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부족한 제 작품을 지켜봐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항상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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