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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성큼 다가온 AI 저작권 시대

김영환 기자I 2023.08.14 06:00:0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밀리언셀러로 등극한 소설 ‘아몬드’는 최근 표지를 바꿔 새롭게 출간됐다. 아몬드 저자인 손원평 작가가 1인 출판사를 설립하고 자신의 회사에서 자신의 소설을 새롭게 엮었다. 손 작가가 자신과 협의 없이 소설을 각색한 연극이 지난해 12월 제작돼 무대에 오르면서 ‘작가의 동의’를 침해당했다며 출판사인 창비와 연극 연출가 민모씨에게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출간 연장 계약을 하지 않은 게 배경이다.

이번에는 새로운 ‘아몬드’의 표지 디자인 저작권 문제가 불거졌다. 신규 출간한 아몬드 표지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서 만들었다. 감정 표현 불능증(알렉시티미아)을 가진 주인공을 형상화한 기존 아몬드의 무표정한 소년 얼굴이 신규 출간본에서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뒷모습으로 대체됐다.
창비에서 출간된 ‘아몬드’(사진 맨왼쪽)와 다즐링에서 출간된 ‘아몬드’(사진=창비, 다즐링)
현행법은 AI를 저작권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저작권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인간이 아닌 AI의 모방은 창조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새 아몬드 표지를 그려낸 AI가 과거 아몬드 표지의 소년을 참고했을 수 있다는 의혹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AI 후보정으로 작업한 네이버웹툰의 한 웹툰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독자들의 외면을 받은 사례도 있다.

AI 기술 발전에 따른 저작권 문제가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올해 초 세계 최대 이미지 제공 업체 게티이미지가 이미지 생성AI 기업 ‘스태빌리티AI’를 상대로 낸 2000조원 규모 소송과 같은 일이 언제든 국내에서 재현될 수 있다. 지난 6월 방한했던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는 AI 콘텐츠의 저작권 문제에 대해 “만약 AI를 이용해 BTS와 비슷한 노래를 만든다면 BTS도 그 수혜를 입어야 한다”면서 “콘텐츠 창작자에 대한 보상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저작권 판단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글’은 더욱이 논란이 될 소지가 크다. 카카오브레인은 AI 모델 ‘시아’의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출간까지 했으나 ‘시아’가 인간이 아니란 이유로 저작권을 등록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국내 많은 벤처·스타트업이 초거대 생성형 AI를 바탕으로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저작권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지 않는다면 언제든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불씨를 안고 사업을 진행하는 셈이다. 수익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AI 창작물의 상업적 이용을 위해선 저작권 확보가 필수다. 반대로 AI가 학습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했는지 판단을 위해서도 명확한 규정 마련이 필수적이다.

더 큰 문제는 AI관련 제도 마련에 한국이 매우 더디다는 점이다. AI 패권국인 미국이나 후발주자인 유럽연합(EU)과 영국, 일본 등은 AI 관련 법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한국은 지난 2021년 발의된 ‘저작권법 전부개정안’이 이견 속에 2년가량 계류 중이다. 상업적 사용에 대한 면책 조항에 대해 창작자들이 권리를 침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며 반발하고 있어서다.

미국, EU 등이 주도해 AI 규범을 만들 경우 국내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 문턱이 높아질 수도 있다. 다음달 발표 예정인 ‘디지털 권리장전’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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