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데일리와 만난 한 중소 여행사 A 대표는 “해외여행이 재개돼 여행업계 전체가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자금력이 있는 대형 여행사는 코로나19 와중에 염가에 나온 해외 호텔 객실을 사전에 대량 확보하는 식으로 재개에 대비했지만, 대다수 중소 여행사는 당장 버티기에 급급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A 대표는 “그토록 고대하던 시장이 다시 열렸지만 결국 코로나19 때보다 더 힘든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업계 내 대형과 중소 여행사 간 간극이 더 벌어지면서 중소 여행업계 도미노 도산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중소 여행사는 자금난과 영업난 외에 일당백 역할을 하던 5년 차 이상 직원들이 전직 또는 이직해 인력난에도 시달리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며 “지금은 위기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지금처럼 수입은 없고 지출만 있는 상황이 몇 달 더 지속되면 줄도산은 시간 문제”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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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확산하는 도산 공포는 여행업계 전체가 개점휴업 상태였던 코로나19 범유행 때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직원 수 3~4명의 소규모 여행사보다 인건비 등 운영비 부담이 큰 직원 10명 이상, 100명 미만 중소 여행사에 집중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산업조사(2021년)에 따르면 상시 고용 근로자가 10명 이상, 100명 미만인 여행사는 전체 1만7434개 중 1137개로 전체의 6.5%를 차지한다. 이들 가운데 숨만 쉬어도 매달 5000만원이 넘는 운영비가 들어가는 직원 10명 이상, 50명 미만인 곳이 1097개나 된다. 최근 공격적인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하나투어, 모두투어 등 직원 수 100명 이상인 대형 여행사는 11개로 비중이 0.1%에 불과하다.
업계에선 코로나19 장기화로 기초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중소 여행업계가 마지막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면서 줄도산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 중소 여행사 대표는 “직원 수가 10명만 돼도 인건비며 사무실 임대비까지 한 달에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만 4000만~5000만원에 달한다”며 “이 정도 금액을 벌려면 한 달에 최소 5만원 마진 여행상품 1000개 이상을 팔아야 하는데 지금 시장 상황은 이 정도 수준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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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중소 여행사는 실적 개선은커녕 코로나19 사태 때와 다를 바 없는 개점휴업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한 중소 여행사 관계자는 “기존 거래하던 고객들에게 SNS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상품을 안내하고 있지만 하루 종일 단 한 건의 상품 문의조차 없는 날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광기금 지원 평균 8000만원 “이마저 빚”
돈줄도 말라버린 상태다. 예상보다 시장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그동안 휴업, 단축 근무 등을 통해 쌓아둔 쌈짓돈마저 모두 동이 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미 상환 능력 한계치까지 대출을 받은 데다 대출액 산정 기준인 자본금, 실적, 담보 등도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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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관광사업체를 대상으로 지원한 수천억 원 규모의 관광진흥기금 시설·운영자금 융자지원도 여행업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3년간 관광진흥기금 융자를 통해 총 5035개 관광사업체에 8307억원(평균 1억6500만원)을 지원했다.
이 가운데 여행업종은 3262개 기업에 2610억원의 융자금이 집행됐다. 1개 기업당 평균 8000만원으로 최대 융자지원 한도인 30억원의 2.7%에 불과한 수준이다. 관광진흥기금 융자지원은 ‘그림의 떡’일 뿐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한 중소 여행사 대표는 “이전에 이미 받은 대출도 있는 데다가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곳이 주변에 부지기수”라며 “융자를 받은 곳도 작년 9월 전후 영업 재개 이후 수입이 크게 늘지 않아 융자금 대부분을 운영비로 소진해 빚만 늘어난 상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