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우리사주 너마저"…반대매매 위기에 직원들 '끙끙'

이지현 기자I 2022.02.18 05:10:00

크래프톤 롯데렌탈 수익률 -40%대 기록
보호예수 1년 해제시 반대매매 위기 도래
고용부 우리사주 손실보전제도 먼지만 풀풀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온 가족 돈을 끌어모으고도 추가로 대출까지 받아 우리사주를 샀는데 수익률이 마이너스입니다. 1년 이내에는 팔 수도 없어 손절도 어려워요. 원금이 빠져나가며 월급이 절반으로 줄었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라 한숨만 나옵니다.”

기업공개(IPO) 시장 활황 속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IPO 이후 주가가 상승해 우리사주를 매입한 직원들이 함박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최근 시장 침체로 공모가 이하로 떨어진 기업들이 늘며 몇몇 기업의 직원들은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있다. 근로자의 재산 형성에 이바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반대의 상황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상장 6개월째 공모가 하회…늘어나는 건 한숨뿐

17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한 기업 중 주가가 가장 많이 하락한 기업은 크래프톤(259960)이다. 상장 전부터 게임업계 1등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이날 종가는 27만3000원으로 공모가(49만8000원) 대비 수익률은 -45%를 기록 중이다.

상장 3개월 만에 58만원으로 최고가를 터치한 이후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더니 지난 14일에는 24만8500원으로 공모가 절반까지 내려왔다.

우리사주로 실제 배정된 주식 수는 35만1525주다. 배정예정수(173만주)의 20%만 실제 배정됐지만, 이를 받은 이들은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에 속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적게는 10주만 받은 이들도 있지만, 많게는 수억원을 대출받아 발이 묶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직원은 5억원을 투입했다가 1년도 안 되는 사이 자산가치가 2억원대로 줄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렌트카업계 1등 롯데렌탈(089860)은 우리사주 배정예정수(288만주)에 절반이 안 되는 124만6282주(43%)만 실제 배정됐다. 상장 당일 6만900원을 터치한 이후 꾸준히 하락해 지난달 28일 장중 최저가인 3만500원까지 내려왔다. 이날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공모가를 크게 밑도는 3만4300원, 수익률 -42%를 기록 중이다.

숙취음료 컨디션과 헛개수로 유명한 HK이노엔(195940)은 배정예정수 202만주가 100% 배정 완료됐다. 회사의 성장성에 대해 직원들도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날 4만600원에 마감하며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31%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 6개월 후 반대매매 대상…고장난 보호장치 먼지만

우리사주제도는 직원들이 우리사주조합을 설립해 회사 주식을 취득, 보유하는 제도다. 회사 입장에선 자사주를 보유하도록 장려해 애사심과 주인의식을 높일 수 있고, 근로자들도 회사 가치가 올라가면 그만큼 재산 증식을 기대할 수 있어 회사와 근로자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제도로 꼽혀왔다.

기업들은 상장을 앞두고 20% 정도를 우리사주조합의 몫으로 배정해 공모주 청약에 우선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다만 일반청약과 달리 공모가의 절반이 아닌 100%를 넣어야 한다. 이 때문에 대출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 주거래 은행 또는 한국증권금융에서 저리에 대출이 가능하다 보니 직원들 입장에서는 종잣돈 없이도 청약을 받을 수 있어 대출 한도까지 돈을 빌려 매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렇게 받은 우리사주는 임직원 보호예수에 따라 1년 동안 팔 수 없다. 퇴사하면 한 달 후 주식이 입고돼 차익실현이 가능하다. 2020년 상장하며 IPO 붐을 일으킨 SK바이오팜(326030)의 경우 상장 5거래일 만에 주가가 공모가(4만9000원) 대비 5배 오른 26만9500원을 찍기도 했다. 당시 10여명의 직원들이 퇴사하며 1인당 평균 16억원에 이르는 차익실현을 했다는 얘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대어급 공모청약 때마다 우리사주를 확보한 직원들의 수익률은 관심을 쏠렸지만, 최근 주가하락 등으로 우리사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크래프톤과 롯데렌탈, HK이노엔 모두 8월이면 우리사주 보호예수 1년이 도래해 주가가 추가 하락할 경우 반대매매 위기에 놓이게 된다. 반대매매 마지노선은 공모가 대비 40% 하락이다. 대출기관은 우선 담보 부족분 해소를 요구하는데, 이것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담보 주식을 임의 처분해 대출금 변제에 충당하는 것이다. 이럴 때 담보 주식의 소유권은 사라진다.

한국증권금융 관계자는 “반대매매의 경우 최후의 수단”이라며 “의무예탁기간 1년이 지난 경우에만 해당 주식을 매도해 대출금을 상환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0% 이상 하락하더라도 모두 반대매매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증권금융 관계자는 “주식 가치가 분자, 대출잔액이 분모”라며 “만약 개인 여유자금이 더해져 우리사주를 매수했다면 분모가 줄어드는 만큼 반대매매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 100% 대출로 매수한 게 아니라면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꾸준히 우리사주 손실보전제도 도입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다. 고용노동부는 2016년 우리사주를 산 직원들이 보호예수 기간 중 주가 하락으로 손해 보는 것을 막기 위해 회사와 우리사주조합이 공동으로 비용을 부담, 일종의 보험 같은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제도는 5년이 지나도록 방치 상태다.

이에 대한 관리를 맡은 증권금융 관계자는 “조합이 이를 활용하는지 여부를 우리쪽에 알릴 의무가 없어 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실 파생상품 거래를 할 길을 만들어줬는데, 파생상품 가격이 너무 높고 유동성이 너무 커서 (금융회사에서) 관련 상품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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