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저절로 팔리는 그림이 있다더냐

오현주 기자I 2019.05.13 00:45:00

노화랑 이수동 개인전 '꽃길을 걷다'
40년 화업 절반 혹독한 무명작가서
가족·사랑·행복 주제 인기작가 반열
정점의 서정성, 디테일·근면성 무기
완판작가 넘어 존경받는 대가 꿈꿔

작가 이수동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노화랑 ‘꽃길을 걷다’ 전에 건 ‘늘봄 우리집’(2017) 옆에 섰다. 잔잔한 작품 중 비교적 규모가 큰 100호(112.1×162.2㎝)짜리 작품이다. 꽃송이 하나하나를 범벅으로 채운 캔버스에 길게 세운 기둥 4개를 두고 자신과 아내, 두 딸을 형상화했다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어김없이 달이 떴다. 죽죽 뻗은 하얀 자작나무 숲도 여전하고. 아, 캔버스가 터지도록 박아놓은 꽃. 더 화려해졌다고 해야 할까. 풍선처럼 사탕처럼 빽빽하게 나무를 타고 올라 부풀어오른 꽃이라니. 봄은 봄대로 아련하고 여름은 여름대로 싱그럽다. 그새 못 보던 초록잎도 생겼다. ‘봄동’이란다. 그 봄동이 자작나무숲 속에 섬처럼 덩그러니, 성처럼 꾸민 화분 위에도 덩그러니. 꽃이든 자작나무든 봄동이든, 틈새마다 한껏 몸을 낮춘 두 연인은 여전히 서로를 보듬는다. 그리움은 길고 만남은 짧았다. 그래도 괜찮다. 그들은 만나게 돼 있으니. 남자와 여자, 하늘과 땅, 바람과 구름,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 그들은 재회하고 또 헤어지며 애타게 기다린다.

안다. 현실에는 없을 장면이다. 그런데도 또 들여다본다. 나를 찾는 거다. 다툼도 없고 갈등도 없는 그 세상에 그저 내가 있었으면 하는 거다. 그 이유라면 설명이 된다. 이 그림을, 이 작가를 기다리는 이유. 담뿍 안아 내 세계에 옮겨 놓고 싶은 이유. 그렇게 기어이 ‘완판’ 타이틀을 작가에게 안겨줬던 이유.

이수동의 ‘내 사랑을 전해다오’(2019). 뭉실뭉실한 구름, 탁 트인 전경, 투명하고 밝은 색상에 아기자기한 서체로 올린 작품명과 사인. 한눈에 알아볼 작가 특유의 표현법이다(사진=노화랑).


작가 이수동(60)이 돌아왔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노화랑에 펼친 개인전 ‘꽃길을 걷다’로 섰다. 지난해였다. 3년 만의 개인전, 11년 만에 돌아온 고향 노화랑 전시에서 65점 전부를 팔아내며 녹슬지 않은 붓힘을 보여줬더랬다. 그러곤 1년 뒤. 노련해진 디테일, 정점에 오른 서정성, 쉼 없는 근면성을 무기로 작업한 48점을 다시 걸었다.

안부를 물으니 엉뚱한 대답이 돌아온다. 요리를 배우러 다닌다는 거다. 그러곤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법을 아느냐로 되묻는다. “라면에 후추를 좀 넣으면 된다.” 화랑에서 내준 카푸치노잔에 솔솔 설탕을 뿌리며 얹은 얘기다. ‘경상도 마초’가 뿌려주는 설탕이 얼마나 달콤한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경상도 마초라. 그이는 자신을 이렇게 불렀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꽃이며(‘두딸 나무’ 2018, ‘높은 곳에서 꽃 피우다’ 2019 등), 달이며(‘가을편지’ 2018, ‘문 댄스’ 2017 등), 구름이며(‘내 사랑을 전해다오’ 2019, ‘두둥실’ 2019 등), 봄이며(‘꽃바람’ 2019, ‘늘봄 우리집’ 2017 등), 사랑이며(‘연서’ 2018, ‘어서 오세요’ 2019 ‘옥수’ 2018 등), 이 모든 극단의 행복추구장치가 경상도 남자의 순정에서 비롯됐다는 소린데. 이런 비유를 했다. “배우 마동석이 가녀린 여인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면, 장미 한 다발 들고 눈 속에 푹 파묻혀 있다면 얼마나 감동적이겠나.” 그래. 그렇게 그이를 1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이수동의 ‘문 댄스’(2017). 둥그렇고 환한 보름달 아래 늘 어떤 일이 벌어진다. 사랑이든 행복이든 일상이든 말이다(사진=노화랑).


△“돈을 벌면 애들이 나를 존경해줄까”

지난 얘기는 그만하자. 드라마 ‘가을동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었다니, 40년 화업 절반을 혹독하게 무명으로 지냈다느니. 결국 살던 대구를, 가족을 떠나 홀로 택한 서울행에서 붓을 갈던 2년 만에 소위 ‘대박신화’를 써냈다느니. 어찌 이 드라마틱한 인생역전을 빼놓고 ‘이수동’을 말할 수 있겠나. 하지만 오로지 살자고 상경한 이후 15년 남짓. 세상은 변했고 작가도 달라졌다. 꽃길, 꿈길, 사랑길에 숱하게 흩뿌렸던 것이 꽃·꿈·사랑만이 아닐 거라 짐작하니까.

이수동의 ‘금빛 찬란한’(2019). 자작나무는 작가의 오래된 아이템이다. 처음 자작나무를 본 건 어느 은행로비에 비치된 책자, 옛 소련을 소개한 관광가이드북에서였다고 했다. 여기에 유독 이번 전시에 즐겨쓴 색을 깔았다. 밝은 핑크의 ‘리빙코럴’이다(사진=노화랑).


그래서 물었다. 차고 넘치는 당신의 행복, 그게 도대체 뭐냐고. “가족과의 식사”란 대답이 돌아왔다. “차도 안 좋아하고 옷도 안 좋아하니 가족에게 쓸밖에.” 그렇다고 뭘 대단하게 쓰는 것도 아니란다. “막 지르는 게 밥 먹는 것뿐”이라니. 그러면 가족은 또 뭔가. “2004년 상경할 때 사실상 집에선 방출된 셈이다. 아무도 안 잡았으니까. 그런데 그 방출이 오늘 나를 있게 했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고집은 있어 한 해에 딱 한 번씩만 하던 전시로 낸 수익이라곤 1500만원 남짓. 그런 가장에 지치지 않을 가족은 없다. 오죽했으면 작가 스스로 “돈을 벌면 애들이 나를 존경해줄까”를 묻고 다녔다니.

작가 이수동이 자신의 작품 ‘우리는 늘봄’(2016) 옆에 섰다. 작품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하는 말이 있단다. “그림은 어떻게 변화시키는 게 아니고 그저 변하는 것”이라고. “매일 한두 시간씩 우린 점점 나이가 들고 있는 거 아닌가”(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런데 그날이 온 거다. 아니 만들어낸 거다. 내놓는 족족 팔려나가는. 문득 인사동에서 파는 술의 절반은 먹어치웠을 거라는 장욱진(1917∼1990) 화백이 떠올랐다. 그의 그림에 영원한 소재가 된 ‘가족’은 곧 미안함이고 절박함이었으니까. 과연 장 화백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그 행복이 작가 자신의 것이 됐을까. “다른 이들이 행복해 보인다고 하니 행복한 거다.”

처음부터 화사했던 건 아니었다. 뭉크의 ‘절규’보다 더한 인물화도 그렸더랬다. 1990년에 판 그 그림을 본 어느 꼬마가 울음을 터트렸다는 충격에 화풍을 바꿨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그렇다고 인물화를 완전히 접은 건 아니다. 대신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처럼 친근하고 수더분한 얼굴이 됐다. 그들을 나무판에 옮기는 부조작업도 틈틈이 한다. “인물이 기본기”란 생각은 변함이 없어서다.

이수동의 ‘즐거운 귀가’(2007). 예전 즐겨그리던 인물화로 만든 부조작품이다. 이번 전시에는 나오지 않았다. 인터뷰 중 작가의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그림파일을 보고 얻었다(사진=이수동).


△“화가에게 존경받는 화가, 이젠 대가가 되고 싶다.”

완판작가 맞다. 솔드아웃 맞다. 하지만 저절로 팔리는 그림이 있다더냐. 보는 이를 무장해제 시키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마법은 아무나 부리는 게 아니다. “메모하고 생각하고. 특별한 소재가 나와 그리다 보면 자꾸 연구를 하게 된다. 또 뭐가 없을까 하고.” 일상으로서의 작업이란 얘기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 일을 하지 않았나. 아무것도 안 하는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 예술이 높은 어디에 있는 것도 아니고. 친근하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수동의 ‘꽃피는 우리집’(2018). 풍선처럼 사탕처럼 빽빽하게 나무를 타고 올라 부풀어오른 꽃도 모자라 나무 둥지에 집을 짓고 창을 냈다. 나무·구름·꽃·연인, 작가가 꾸린 행복추구장치에 드는 요소 중 낯설고 비딱한 것은 하나도 없다(사진=노화랑).


작가의 작품을 두고 ‘시적인 그림’이라고들 한다. 감성이 흐르고 물결친다는 뜻인데, 비단 그림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림 ‘봄바람’(2019)에 붙인 단상 한 번 보고 가자.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던 봄. 오자마자 꽃잎 흩날리는 바람타고 바로 가려고 한다. 게 섰거라 봄바람! 하지만 씨알도 안 먹히고 달아나기 바쁘네. 저 남녀, 사랑 막 익어가는 중인데. 하는 수 없이 내가 그림으로 잡아 두었다.”

전시장에 나오진 못한 예전 작품 ‘남’(男·1996)에 붙은 글 한 편 더. “딱 20년 전 그림. 그 당시 상황이 막 그려진다. 저 자켓은, ‘에레우노’라는 이태리 브랜드. 그림과 주거니 받거니. 당시의 이 옷값보다 더 비싼 내 옷은 현재도 없다. 아직도 옷장에 전시.” 목부터 자켓 첫 단추까지 길게 담은 작품엔 넥타이에 지그재그 길을 내고 여인을 올렸더랬다. 설명은 이렇다. “남자는 매일 그녀를 품고 삽니다. 정성스레 가슴에 안고 집을 나서지요.”

이수동의 ‘남’(男·2007). 작가가 그림과 바꿨다는 ‘에레우노’라는 이태리 브랜드 자켓을 그렸다. 유심히 볼 건 넥타이에 얹은 여인. 남자가 매일 품고 산다는 ‘그녀’다. 이번 전시에는 나오지 않은 작품이다. 인터뷰 중 작가의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그림파일을 보고 얻었다(사진=이수동).


그러던 그도 이젠 그림이 품을 떠나는 게 허전하다고 고백한다. 다시 돌아오는 그림이 있었으면 한다는 거다. 전시에 몇점 안 내놓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란다. “안 꺼내놓을 순 없다. 성층권에 올라가면 안 내놔도 되겠지만. 아직은 나를 계속 알려야 하니까.” 성층권. 이는 작가가 구분한 작가의 레벨쯤 된다. 아직 자신은 대류권에 머물 뿐이란다. “기름기 쫙 빼고 담백하게 남기는 것, 압축하고 압축해서 점 하나 쿡 찍어놔도 다 들여다보이는 그 단계 말이다.”

화단에 영원한 낭만주의자로 남을 줄만 알았던 그이를 뒤흔드는 게 생긴 거다. “화가에게 존경받는 화가, 이젠 그런 대가가 되고 싶다.”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오래전부터 이젤에 붙여뒀던 문구란다. 그런데 이것이 요즘 그이의 마음을 헤집는 모양이다. 한때 인생역전을 꿈꿨더랬다. 그런데 한방이 아닌 누적이란 걸 알게 됐단다. “솔드아웃이니 인기니 다 내려놓고서도 특별한 게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 내 그림이 대가의 풍모는 아니니까. 그저 정성스러울 뿐이니까.”

작가 이수동이 자신의 작품 사이에 기대고 섰다. 왼쪽부터 ‘두딸 나무’(2018), ‘즐거운 우리집’(2019), ‘풀잎사랑’(2018)이다. 현실에는 없을 장면들. 그런데 또 들여다보게 된다. 다툼도 없고 갈등도 없는 그 세상에 그저 내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일 거다. 작가 이수동을 기다리는 이유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올해가 회갑이라니, 다시 돌아올 10년쯤 뒤가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이 돼 있을 거다. 더 섬세하고 중성화한 모습으로. 찰랑거리는 핑크색 얘기만 계속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곤 웃는다. 그냥 웃는다. 세상에 ‘무조건 행복’이란 게 가능한가. 쓸쓸한 행복도 있는 법이다. 쓸쓸하다고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울고 있다고 다 불행한 게 아니듯이. 그저 때가 된 듯싶다. 호젓한 그이의 작업을 읽어줄 그때가. 전시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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