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을 만났다. 개인적인 일이라 여기에 쓰기가 조심스럽지만, 자식 같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시시각각 TV로 지켜보며 나는 나에게 분노했다. 내가 그저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나 살아가는 것에만 골몰했기 때문에 저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저 아이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배에 갇힌 아이들이 단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한 것은 이 사회의 시스템 문제라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한 번도 광장에 나가지 않았는데, 가만히 있지 않기로 결심한 나는 그때부터 다시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에 나가니 그동안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피해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일상을 고민하는 동안, 세상의 문제를 자기 일상으로 삼아 고민하고 싸우는 운동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성폭력을 경험한다는 젊은 여성들의 절규가 들리기 시작했다. 강남역 근처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개인의 범죄로만 보지 않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세월호 이전이라면 모두 일탈적인 개인의 일, 이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서 벌어진 예외적인 일로 보았을 것들이었다.
강남의 클럽 버닝썬에서 벌어진 일들이 경찰의 조직적 비호를 받았다는 보도를 접하고 있다. 김학의씨가 의혹에도 불구하고 차관에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은 검찰의 고위 인사들이 그 사건을 열심히 덮었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고 장자연씨의 죽음이 잠시 떠들썩하다가 잊힌 것은 언론사의 은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기사도 보았다. 무엇보다 기가 막힌 것은 검찰과 경찰, 모 언론사가 각자의 치부를 두고 서로를 위협하는 ‘딜’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니까 세 권력 주체가 “네가 까면 나도 깔 것이 있어” 이런 식으로 서로 눈치 보며 수사의 강도와 범위를 조절하며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호사가들의 시나리오에 불과한 것이기를 바란다.
연예인 정준영이 여성들을 그렇게 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그 일을 반복하며 거리낌 없이 단체 채팅방에 공개하고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되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낄낄거리며 “원래 이러고 노는 거지. 다들 하고 있는 거 아냐?” 하는 식의 공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되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기 일에 바빠서, 이런 일들은 예외적인 개인의 일탈일 뿐 우리 사회의 보편적 문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여성을 물건처럼 거래하고, 장난처럼 소비하고, 비즈니스를 위한 윤활유로 삼는 일을 더 이상 용납하지 말자. 가만히 있지 말고 침묵을 깨고 말하자. “그건 범죄야” 이렇게. 보통사람들의 작은 언행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다. 세월호를 목격한 우리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다시는 이전과 같아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