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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출에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었던 의료기기업체 B사는 사업계획을 보수적으로 전환했다. 수출 비중이 60% 이상인 이 회사는 환율 하락으로 매출액 감소는 물론 전략적으로 확대하려던 중국시장에 대한 걱정도 커졌다. B사는 지난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중국시장에서 매출을 크게 일으키지 못했다. 한·중 관계가 완화된 올해야말로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적기이지만, 최근 환율 하락으로 쉽사리 영업 강화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B사 대표는 “환변동에 대한 헷지를 진행하고 있지만 급격한 환율 하락은 전반적으로 수출 영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며 “수출 확대 적기에 사업을 강화하지 못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큰 손실”이라고 토로했다.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수출 중소기업에 적신호가 켜졌다. 최저임금 인상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미국 보호무역주의 등 각종 비용 부담 요인이 가중된 데다 환율까지 요동치면서 경영환경이 불확실진 상황이다. 4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출 기업들의 손익분기점 평균 환율은 1045원(중소기업 1046원·대기업 1040원)이며, 적정 환율은 평균 1073원(중소기업 1073원·대기업 1069원)이다. 현재 환율은 손익분기점 수준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환율이 추가적으로 하락할 경우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질 것으로 우려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 하락하면 총 수출이 0.51%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별로는 기계분야가 0.76% 줄어들어 가장 큰 영향을 입고, 이어 정보기술(IT) (0.57%), 자동차(0.4%), 석유화학(0.37%), 철강(0.35%), 선박(0.18%) 순으로 수출 효과가 줄었다.
이는 환율이 떨어져도 수출기업이 제품 가격을 크게 올릴 수 없는 영향이 크다. 환율의 수출가격 전가율은 -0.19%이다. 환율이 10% 하락할 때 수출가격은 1.9% 밖에 올릴 수 없는 것. 환율이 떨어져도 수출기업이 이를 수출가격에 전가할 수 없어 그만큼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국산보다는 좋은 품질, 일본산보다는 싼 가격을 내세웠던 우리 기업들이 더 이상 가격을 무기로 활용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인한 타격이 대기업보다 더 크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환율이 10% 떨어지면 자동차·조선 분야 중소기업 영업이익은 5% 이상 줄어든다. 중소기업은 특히 브랜드나 유통망 같은 비가격 경쟁력이 약해 원·달러 환율의 영향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홍성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국의 직·간접적인 외환시장 개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당분간 환율의 추가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변수는 미국의 절상 압박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오는 12일 재무부가 환율보고서를 발표, 우리나라와 중국, 독일 등에 대한 통화가치 절상 압박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발표를 앞두고 금융당국의 개입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 주요 수출국인 미국에서 보호무역주의와 통상 압박이 전개되는만큼 국내 수출기업들은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최근 경기지표 호조를 수출이 견인한다는 점에서 급격한 원화가치 상승은 정부의 경제운용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김태환 중소기업중앙회 통상협력부장은 “중소기업들은 환율에 대해 원가절감이나 수출단가를 조정하는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면서 “중소기업들도 지속적으로 선물환·환변동보험 등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환위험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