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문화평론가·한양대 실용음악과 겸임교수] 이화여대가 개교 130년만에 처음으로 교수들이 집단행동 하고 학생들이 장기간 총장 퇴진을 요구해 최경희 총장이 19일 사퇴했다. 불과 이틀 전 교수 및 교직원과 대화의 자리에서도 사퇴하지 않겠다고 고집했지만 결국 전격적으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 교수비상대책위원회 시위가 예고된 오후 3시30분을 2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점잖은 교수들이 서명서에 사인하고 얼굴을 내놓고 시위에 나서기까지 고뇌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을 달래 해산시키는 것이 학생과 학교를 위하는 길인지, 함께 싸우는 것이 바람직한 지 밤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해 집단 행동이 일어나고 총장 사퇴까지 이어졌지만 이런 질문을 해 본다. 만약 소셜미디어(SNS)가 없던 시대였다면 이 모든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을까.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보면 총장과 학생의 소통 방식이 극단적으로 달랐다는 점에 주목한다. 궁금한 점을 묻고 싶은 학교 구성원에게 ‘불통’으로 일관한 소통 방식이 안타깝기만 하다. ‘총장이니까’ ‘교수이니까’ 결정을 통보하고 이에 따르는 방식은 ‘권위’가 아니라 ‘아집’일 뿐이다. 더구나 이제는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언제 어디에서 격의없이 만나는 소통 방식이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대학생이 됐다. 이들은 청소년 시절 하루 종일 카카오톡에서 친구들과 시시콜콜 대화를 나눴을 것이고 어쩌면 ‘X세대’로 청년기를 보냈을 부모와도 친구처럼 지내는 그런 대학생이다.
물론 총장이 대화를 잘 했다면 잘못을 숨길 수 있으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애초에 불씨를 당겼던 대학생들이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니라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아니다. 최 총장의 불통 스타일은 이미 바뀐 세상의 소통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총장이 대학 캠퍼스에서 오프라인으로 둘러 보았을 때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온라인의 네트워크를 타고 학생들은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눴다. 온라인 네트워크는 학생들과 졸업생, 졸업생과 교수를 구분하지 않고 넘나든다. 길에서 마주친다면 얼굴을 모른 채 지나갈지도 모를, 전혀 모르는 이들과 학교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토의하는 일이 네트워크에서는 늘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의 문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총장에게는 눈 앞 학생들만 보였고 경찰이 그들만 해산시켜준다면 마무리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SNS업체들이 고객을 유지하고 머물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행동을 유도한 정책이 시위 참여자들로 하여금 이슈를 날마다 들여다보게 하고 모이게 하고 댓글을 달고 공유하게 했다. 물론 언론의 보도와 오프라인에서의 시위 등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소통의 간극은 비단 이화여대 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국민,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간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뉴욕대 언론대학원 교수인 SNS전문가 클레이 셔키는 ‘들리고 쏠리고 들끓다‘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온라인 시대를 맞아 여론의 향방을 진지하게 논의했다. 소셜 네트워킹이 갖고 있는 ‘조직없는 조직활동’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셔키는 2006년 미국 뉴욕에서 에반이라는 여성이 휴대전화를 분실한 뒤 전화를 습득한 10대 이바나가 돌려주지 않았던 사건에 주목했다. 에반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외면 당하자 웹사이트를 개설해 이 내용을 공개한 사건을 소개했다. 사이트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언론에 보도되며 결국 이바나가 체포된 이 사건을 두고 셔키는 ‘보이는 모든 것을 바꾸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이미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셔키의 책 제목을 한글로 직역하면 ‘모두가 온다(Here comes everybody)’이다. 그 변화는 이제 한국에서도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