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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의 눈] 남편은 덤으로 드립니다

안승찬 기자I 2016.08.17 06:00:00

경제 약한 힐러리 "남편이 경제정책 책임질 것" 전략
92년 빌 클린턴도 "날 뽑으면 힐러리 덤으로 얻는다" 유세
역대 ''퍼스트 레이디''엔 "나댄다" "생각없다" 비아냥 많지만
''빌 클린턴이 만찬 꽃꽂이 챙기겠나''..여성과...

(사진=AFP)


[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지난 1992년 선거에서 빌 클린턴은 “나를 뽑으면 힐러리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유능한 변호사이자 아내인 힐러리의 능력을 그만큼 높이 샀다.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된 힐리러 클린턴은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선거공약의 하나로 내세운다.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은 경제를 아는 사람”이라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경제 부흥의 책임을 맡기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영락없는 부부다.

꼭 부부의 금슬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다. 국무장관 출신인 힐러리 클린턴의 최대 약점은 경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힐러리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를 대부분 앞서지만, 유독 경제 문제만은 트럼프에 뒤처진다.

사람들은 뉴욕 한복판에 ‘트럼프 제국’을 건설한 갑부 트럼프를 향해 왠지 경제를 잘 알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다.

힐러리 입장에서 남편 빌 클린턴은 최고의 보완재다. 24년 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획기적인 선거구호를 내세우며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다. 실제로 빌 클린턴은 미국 신경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미국에 단 4명뿐인 살아 있는 전직 대통령 아닌가. 8년간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정치계의 거물을 이용하지 않을 리 없다. ‘나를 뽑으면 남편을 덤으로 드립니다’란 선거 전략이 수십년만에 다시 등장한 이유다.

요즘 빌 클린턴은 세계 경제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힐러리가 당선되면 언제든 다시 달려나갈 준비가 돼 있다.

눈길을 끄는 건 미국인들이 처음 접하게 된 ‘퍼스트 잰틀맨’에 대해 과거 퍼스트 레이디를 향한 평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퍼스트 레이디에 대해 때로는 ‘나댄다’라고 욕하고 때로는 ‘생각이 없다’고 비아냥댄다.

일 욕심이 많았던 힐러리가 퍼스트 레이디 시절 대통령 집무공간인 웨스트윙에 사무실을 마련한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크게 나빠졌다. 클린턴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졌을 정도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 바버라 부시가 웰즐리 여대 졸업식 연설자에 이름을 올리자 학생들은 “단지 대통령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연설할 자격이 없다”고 반대시위를 벌였다. 퍼스트 레이디가 앞에 나서는 걸 반기지 않는다.

도덕적 잣대도 엄격하다. 과거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베티 포드는 이혼한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퍼스트 레이디 자질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힐러리의 남편 빌 클린턴은 그 유명한 ‘지퍼 게이트’의 주인공이다. 모니카 르윈스키와 떠들썩한 섹스 스캔들을 일으켰다.

하지만 클린턴 캠프는 이 문제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들은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면 남편인 빌 클린턴은 경제 문제 등 각종 정책에 깊숙하게 개입할 것으로 당연히 생각한다. 퍼스트 레이디의 전통적인 역할이었던 백악관 만찬 메뉴나 꽃꽂이를 빌 클린턴이 챙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퍼스트 레이디 연구가인 케이트 앤더슨 브로어는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불륜을 저지르다 들켰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퍼스트 레이디 자리에서 퇴출당할 게 분명하다”면서 “빌 클린턴이 여성이었다면 미국인들이 그렇게 대놓고 불륜을 저지른 사람을 퍼스트 레이디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상이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과 잣대가 참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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