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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읽어주는 남자]못 믿을 '삼시세끼'

전재욱 기자I 2015.08.17 05:00:00

산업용 고무통에 빙초산으로 채소 절여 판매
미리 끓여놓은 매운탕 덜어서 팔다가 ''식중독''
김밥재료 관리 소홀로 500명 집단 배앓이도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삼시세끼 중 집에서 해결하는 끼니가 몇 끼나 되십니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하루 세끼를 모두 집 밖에서 먹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영 못 미더운 게 사 먹는 밥입니다. 여름철에는 음식을 잘못 먹고 탈 난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겁니다. 특히 더위가 한 풀 꺾이는 8월은 일년 중 가장 빈번하게 식중독 사고가 발생하는 달입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식품이 식탁을 점령한 지 오래입니다. 우리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음식들로 끼니를 해결하곤 합니다. ‘삼시세끼’나 ‘집밥 백선생’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도 사 먹는 식품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겁니다.

가공식품업자인 김모(61)씨 사례를 보면 사 먹는 식품에 대한 불안감이 결코 근거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김씨는 말 그대로 ‘땅 파서 음식을 만들다’ 적발돼 처벌을 받았습니다.

고추, 깻잎 따위를 절여서 팔아온 김씨는 650리터짜리 대형 산업용 고무통에 재료들을 채우고, 빙초산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지하수를 부었습니다. 수질검사 따위는 무시했습니다. 상온에 두는 게 숙성이 빠르다는 이유로 냉장 시설도 갖추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한술 더 떠 밀폐하는 게 더 빨리 숙성된다며 고무통을 방수포로 덮은 뒤 포크레인을 동원, 땅을 파서 흙으로 고무통을 덮었습니다. 이렇게 절인 장아찌는 그 지하수로 헹궈냈습니다.

김씨는 지난해 5월부터 2월까지 동네 반찬가게 등을 통해 이렇게 제조한 장아찌 등 반찬을 유통하다가 적발됐습니다. 김씨가 판매한 반찬에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바실러스 세레우스균이 검출됐고, 검찰은 김씨를 식품위생법 위반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주문하자마자 음식이 나온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닙니다. 횟집주인 전모(34)씨는 매운탕을 미리 끓여두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일부를 덜어낸 뒤 데워서 손님상에 내놓는 방식으로 장사를 했습니다. 그러다 작년 5월 사고가 났습니다. 매운탕이 상하는 바람에 손님들이 식중독에 걸린 겁니다. 법원은 전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김밥집 주인의 부주의로 수백명이 동시에 배앓이로 고생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작년 7월, 김밥집 주인 김모(57)씨가 만든 김밥을 먹고 단체 손님 500여명이 배탈이 났습니다. 식중독균이 번진 계란지단으로 김밥을 말았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법원은 김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유통기한을 넘긴 식자재로 식품을 만들다 적발되면 양심불량 식품업자들의 변명은 대동소이 합니다. “팔려고 보관한 게 아니었다.” 왜 팔지도 못할 식자재를 냉장고에 쌓아두는 지 이해가 안됩니다만 짠 듯이 비슷한 해명을 합니다.

작년 3월 지방 모 시청 단속반은 급식자재 납품업자 문모씨의 사업장을 뒤지다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을 넘긴 식자재를 발견했습니다. 영업정지와 과징금 처분을 받은 문씨는 “반품할 것과 판매할 것을 따로 보관했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신속하게 폐기·반품해야 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개인금고에 회삿돈을 보관한 것은 맞지만, 따로 관리했다”고 주장해 횡령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떠오르네요. 문씨가 억울할 법도 합니다.

불량식품을 감시해야 할 업체가 업무를 소홀히 해 처벌받기도 합니다. 식품의약처가 업무를 위탁한 식품위생검사기관인 E사는 2013~2014년까지 2년 동안 식품회사의 제품을 검사하지도 않고 식용적합 판정을 내렸습니다. 중금속, 대장균 등 유해물질 검사를 받지 않은 식품이 대량으로 시중에 풀렸습니다. 돈가스부터 두부, 계란, 닭고기까지 다양했습니다. 법원은 E사 대표 등 책임자 2명에게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못믿을 식품들이 많다 보니 이를 악용해 선량한 식당 주인들의 등을 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모(33)씨는 “어제 시킨 짬뽕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 “여기 햄버거를 먹었더니 배가 아프다”는 식으로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공갈을 쳤습니다.

보상을 하지 않으면 음식에 문제가 있다고 소문을 내겠다는 협박에 질겁한 식당 주인들 중 일부가 정씨에게 돈을 뜯겼습니다. 정씨는 작년 2~11월 사이 이런 식으로 식당 3곳에서 145만원을 뜯어냈다가 처벌을 받았습니다. 법원은 “실제 식중독에 걸리지도 않고 영업장에 배상을 요구한 범행을 반복해 죄질이 불량하다”며 정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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