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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異야기]매트리스 조달시장 70%석권, 금성침대 비결

김영환 기자I 2015.04.22 03:00:00

매트리스 관련 특허만 23개..스프링침대 전문가
포인트를 집어낸 기술력으로 한결같은 성장 이끌어
40년 한길..브랜드 이름 높여 도약 이끈다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침대 한길만을 걸어오면서 많은 성과도 냈습니다. 이제 우리 이름을 알릴 때가 됐죠. 저렴한 가격에 품질까지 좋은데 브랜드 인지도가 부족해 아쉬웠지만 이제 다를 겁니다.”

고중환(61) 금성침대 대표가 45년 침대 외길을 꿋꿋하게 걷고 있는 비결은 ‘혁신’이다.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틈새를 지속적으로 발굴하면서 지금의 금성침대를 완성했다.

금성침대는 스프링 침대업계에서 에이스침대(003800)와 시몬스침대의 뒤를 잇는 3위 업체다. 매트리스로는 처음으로 우수조달제품으로 선정될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국립대 기숙사나 국방부 숙소 등지에 들어가는 매트리스 조달제품의 70%가 금성침대가 만든 것이다.

회사 창립의 밑거름이 됐던 침대 클립 대량생산기술부터 최근 회사매출을 이끌고 있는 침대 주변부가 가라앉는 것을 막는 기술까지 금성침대는 23개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고중환 금성침대 대표가 자사 침대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금성침대는 모서리 꺼짐을 막는 기술로 2011년 특허를 받았다. 금성침대 제공
고 대표는 “온오프라인 등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지고 최근 제품 교체주기가 빨라지는 등 침대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됐다”며 “금성침대는 타사 대비 50% 수준인 가격에 경쟁력있는 품질까지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금성침대의 매출액은 약 270억원, 2013년 매출 220억원 대비 약 50억원 가량 향상된 성적표다.

금성침대는 지난 2012년 우수조달제품으로 선정됐다. 금성침대의 매출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비결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침대를 오래 쓰다보면 상대적으로 먼저 가라앉는 침대 모서리를 잡는 기술이 그것이다. 모서리 꺼짐을 방지하는 기술은 침대업계의 최근 화두였다. 고중환 대표도 여기에 매진했다.

고 대표는 “침대 모서리에 스펀지를 대고 그 안에 스프링을 끼어넣을 수 있는 기술을 생각해내 특허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단순하면서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물론 경쟁사도 스펀지를 사용하는 기술을 응용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고 대표가 보기에 “단가가 비쌌고 제조 시간도 더 길었다”. 침대 모서리에 들어가는 스프링 전체를 스펀지로 감싸는 공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금성침대는 스펀지를 따로 가공하지 않고 스펀지 중간중간에 홈을 몇 개 내서 그 안에 스프링을 겹치는 방법으로 특허를 따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구보다 먼저 기술을 발견하는 것. 바로 열정이 주는 선물이다. 고중환 대표는 스스로를 “침대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자나깨나 침대를 생각하는 그 열정”이 아주 작은 부분에서의 혁신을 이끌었다.

우수조달제품으로 선정되면서 금성침대는 톡톡한 효과를 봤다. 침대는 대표적인 시즌 상품이다. 결혼이나 이사가 많은 봄가을에 매출이 집중된다. 특히 겨울에는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기숙사에 주로 공급되는 조달 침대는 반대로 학생들이 방학을 맞는 한여름과 한겨울에 바쁘다. 고 대표는 “일년 내내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라며 웃었다.

-침대회사를 차린 계기는.

△침대와 인연을 맺은 건 중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70년이다. 언젠가는 침대가 대중화될 것이라는 마음이 있어 침대공장에 취직했다. 클립이라는 작은 부품에 주목했다. 당시 기술로는 3~4명의 근로자가 하루종일 매달려 1만개 정도를 만들었다. 거진 반은 버리고 있었다.

(클립은 스프링과 침대 매트리스를 받쳐주는 철 프레임을 고정시켜주는 부품이다. 1970년대에는 클립을 제작하면서 철판의 40~50%를 쓰지 못했다. 이를 다시 녹여 쓰는 과정에서 비용이 더 발생했다.)

매트리스를 고정시켜주는 쇠 프레임과 스프링을 클립으로 고정시킨 모습. 클립의 대량제조기술은 지금의 금성침대를 만든 일등공신이다. 금성침대 제공
클립을 개량하면 뭐가 되도 될 것 같았다. 출퇴근 하는 시간이 아까워 회사 옥상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면서 연구했다. 클립 모양을 새롭게 바꿔 버려지는 부분을 최소화됐다. 철판의 모양도 롤형태로 바꿔 클립을 생산하는 자동화기계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기계에서 하루에 클립을 20만개씩 만들었다. 사람이 하는 거에 100배 이상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고 대표는 1982년 클립을 생산하는 ‘금성공업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경영인 길에 나섰다. 서울 성수동에 있는 냉장고 수리점 한 켠에 조그맣게 기계를 들여놓고 시작한 사업은 클립 제조 부문을 독점하다시피하며 나날이 성장했다.)

-침대 부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침대를 만들게 됐다.

△사업이 잘되니까 이 업체 저 업체가 따라 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특허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특허를 신청한다는 생각도 못 했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누비였다. 매트리스를 덮는 누비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미국, 이탈리아에서 비싼 장비를 사왔다. 그렇게 비싼 장비가 잘 없었으니 품질이 훌륭했다.

그렇게 스프링까지 제조하면서 매트리스를 만들 기술력을 조금씩 확보했다. 매트리스를 만들었을 때 이걸 빨 수 없겠냐는 문의가 참 많았다. 업계에서도 고민이 많았고. 그래서 매트리스 옆면에 지퍼를 달아 벗길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한참 재탕 매트리스가 시끄러웠을 땐데 안을 볼 수 있으니 우린 그런 피해가 덜했다. 나중에는 윗면만 벗겨낼 수 있는 매트리스를 만들기도 했다.

고중환 금성침대 대표(오른쪽 세번째)가 침대 앞에서 직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금성침대에는 현재 120여명의 직원이 침대를 제조하고 있다. 금성침대 제공
-승승장구 한 것 같지만 위기도 있었을 텐데.

△공장이 불로 다 타버린 적이 있었다. 2001년인데 누전이 일어나 공장이 전부 타 버렸다. 침대 재료는 어떻게 중간에 불을 끌 수가 없다. 다 타게 내버려둬야했다. 다행히 화재보험을 들어서 공장을 잃은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받았던 제품 납기를 맞추는 게 큰일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제품 납기는 꼭 맞추자는 것이 신념이었는데. 그래도 그간 약속을 칼 같이 지켜온터라 협력사들이 이해를 해줬다. 그 때 이 근처 공장들을 돌아다녔다. 퇴근 후에 멈춘 공장을 쓰겠다고 부탁하려고. 인복이 좀 있었던지 몇 군데 공장을 빌릴 수 있었다.

직원들도 참 고마웠다. 옷가지도 다 타버리고 없어서 시내를 데려나가 옷도 사주고 그랬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다른 공장 근처 여관에서 지내면서도 묵묵히 회사가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참 신기한 게 상황이 그 지경인데 그만둔다는 직원이 하나도 없었다.

-올해부터 달라지는 경영 전략이 있나

△라디오 광고를 하고 있다. 회사 만들고 처음 있는 일이다. 한 2년 전엔가 다른 모델을 알아봤는데 조건이 맞지 않아서 쓸 수 없더라.(현재 금성침대는 코미디언 이국주를 모델로 발탁해 라디오 광고 중이다) 역시 우리 브랜드가 있어야지 않나 싶어서 모델을 쓰게 됐다.

사실 금성침대는 가격도 좋고 성능도 좋다. 부족한 게 인지도인데 이제 이걸 차츰 올려볼 참이다. 우수조달제품이란 게 쉽게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지금 우리 브랜드로 30~40%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 고중환 대표는

△1954년 경북 구미 △1970년 오상중 △1971~1975년 에덴침대 △1978~1981년 알파침대 △1982~1987년 금성공업 대표 △1988~1993년 금성누비 대표 △1988~2000년 금성침대랜드 대표 △2001년 금성침대 대표 △2012 한국침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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