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rd WWEF]"여성이여, 먼저 손을 들어라..길이 보인다"

이준기 기자I 2014.09.30 06:00:00

손지애 전 아리랑국제방송 사장 인터뷰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남자 선배가 남자 후배에게만 중요한 일을 맡길 때가 있죠. 그럴 때 먼저 손을 들어보세요.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1985년 어느 날. 월간지 ‘비즈니스코리아’에서 막 수습생활을 시작한 초짜 기자 손지애는 이를 악물었다. 당시만 해도 남자들 일색인 기자 사회에서 편견을 깨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텼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도 밀려왔지만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어느덧 회사에서 ‘이건 손지애 기자에게 맡겨도 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정성을 쏟고 책임감 있게 일 처리를 하다 보니 성과를 내기 시작했죠. (능력을 보여주니) ‘남성들도 그렇게 관계의 벽이 닫혀 있지 않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제3회 세계여성경제포럼 2014(WWEF)에 연사로 나서는 손지애(51·사진) 전 아리랑TV 사장은 인터뷰 내내 관계의 거대한 힘은 ‘적극적인’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언론인과 행정인(G20 대변인)을 거쳐 최고경영자(CEO)와 교육인(미국 로스앤젤레스 서던캘리포니아대 방문교수)으로 매번 화려하게 변신해 워킹맘의 ‘멘토’로 불리는 손지애의 성공스토리를 가감 없이 들어봤다.

◇“선택지 없는 워킹맘, ‘해내겠다’라는 의지 갖춰라”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건 쉽지 않아요. 포기를 쉽게 생각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거죠.”

사람들은 ‘손지애’라는 이름을 들으면 주로 ‘영어를 잘해 성공한 여성’을 떠올릴 법하다. ‘일벌레’나 ‘독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손 전 사장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손사래를 친다. 그들은 손 전 사장이야말로 ‘자상한 엄마’나 ‘참한 맏며느리’의 표본이라고 얘기한다.

사실 손 전 사장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1년에 제사를 일곱 번이나 치르는 맏며느리다. 결혼 후 25년간 시부모를 모시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8년에는 ‘관악효부상’도 받았다.

“지금까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도움이 컸죠. 일차적으로는 인생의 파트너인 남편의 도움이 가장 컸고요. 시집이나 친정 등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을 찾아 주저하지 않고 도움을 청했죠.” 맞닥뜨린 어려움을 홀로 극복하지 말고 주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게 손 전 사장의 생각이다.
◇“나쁜 관계에서도 배운다..끊을 땐 과감히 끊자”

“관계의 힘은 ‘맺음’에서도 나오지만 ‘끊음’에서도 나오기 마련입니다. (관계를) 내려놓을 때는 과감하게 내려놔야 하죠.”

손 전 사장은 사실 기자 초년병 시절에는 모든 사람과 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고 한다. 상대와 껄끄럽게 지낸다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면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먼저 손도 내밀었다. 그러나 40대를 넘어서면서 ‘노력을 해도 안되는 게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서로 맞지 않는데도 어쩔 수 없이 관계의 끈을 쥐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일까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을 파악하는 것도 저 자신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끊음에서도 분명히 배울 게 있다’고 강조한 손 전 사장은 “과거 기자 시절 한 선배가 ‘자신을 판단하는 방법의 하나가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며 “연륜이 쌓이면서 그 조언을 이해하게 됐고, 제 인생에서 썩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후회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좋은 관계는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그녀에게 값싼 질문 하나를 던졌다.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손 전 사장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이 무엇이 됐든 진심이 배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상대방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 사람이 무엇에 관심이 많은지, 가족관계는 어떤지 등등이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작은 선물을 하기도 하고, 그 사람의 배우자에게 생일 축하 한마디를 건네기도 하죠. 사람은 원래 작은 것에 감동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아리랑TV 사장 시절 ‘따듯한 리더십’의 대명사로 불렸다. 손 전 사장은 “리더십의 궁극적인 목표는 조직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그런 생각으로 경영을 하다 보니 직원들도 신이나게 됐고, 그 결과 더 좋은 성과를 낸 것 같다”고 회고했다.

손 전 사장은 야심을 드러내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잘못된 편견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과거 정말 열심히 일하던 여성 후배 한 명이 찾아와 ‘돈에만 눈이 멀었다’는 남성 동료의 이야기를 엿듣고는 속상해한 적이 있었어요. 그 후배는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일만 해왔을 뿐인데 말이죠. 이건 남성들이 고쳐야 할 잘못된 시각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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