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여야 정치권이 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법의 처리를 두고 이견이 거의 없는 것은 추가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대기업이 계속 나와줘야 한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지난 1980년대 이후 웅진·부영·이랜드 정도만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한 것은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올라가는 순간 지원절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중견기업은 1422개(2011년 기준)로 전체의 0.04%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출은 603억달러 규모로 전체의 10.9%이며, 고용은 82만명 이상으로 7.7% 수준이다. 국가 산업정책 자체를 삼분화시켜 중견기업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성장을 바라는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갈 유인은 더 커질 것이고 이는 곧 국가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인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여야가 경제입법 방향이 각각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로 아예 다른데 중견기업만큼은 같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중소기업청 고위관계자 역시 “여야간 공감대가 크다”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최근 시정연설에서 중견기업 육성을 강조했다.
◇중견기업法 입법 급물살
여야가 국회 산업위에서 다루고 있는 중견기업 관련법도 이같은 공감대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중견기업 성장촉진 특별법안(이현재 새누리당 의원 대표발의) △중견기업 경쟁력 강화법 제정안(이원욱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중견기업 기본법안(이강후 새누리당 의원 대표발의) 등 세개다. 여야는 이를 기본법 성격을 가진 일반법(제정안) 형태의 ‘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법’으로 병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면 산업 관련법안들의 연쇄적인 제·개정이 불가피해진다. 예컨대 현재 국회에 계류된 뿌리산업 진흥·첨단화법 개정안(정부 입법)의 통과도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는 뿌리기업 지원대상을 현행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뿌리산업은 주조·금형·용접·열처리 등 기초 공정산업으로, 전자·자동차 같은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미 뿌리기업에 대한 예산지원을 내년부터 더 확대하기로 했다. 중견기업까지 염두에 둔 복안으로 풀이된다.
이외에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등 대·중소기업으로 이분화된 각종 법안들에 중견기업이 포함되는 방향으로 제·개정이 잇따를 전망이다. 조세 관련법안들에서도 중견기업을 명시하는 작업도 뒤따르는 등 세제지원도 더 구체화된다. 여당 한 관계자는 “내년부터 기획재정부에서 중견기업 지원에 대한 검토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제정안에는 중견기업에 대한 정부의 5년단위 기본계획과 1년 단위 시행계획 수립이 명문화된다. 민간단체인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수행기관으로서 법정단체가 된다. 현재 중견기업을 관할하는 독립된 경제단체는 중견기업연합회가 유일하다. 다만 국무총리 산하의 중견기업 심의위원회 설립내용은 빠지고, 계류법안에 명시된 ‘~해야 한다’ 식의 강제조항도 ‘~할 수 있다’ 정도로 자구수정이 이뤄질 것으로 전해졌다.
◇48년만에 바뀌는 국내 산업정책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중소기업으로 이분화됐던 산업정책의 틀이 내년부터 48년 만에 바뀌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중소기업 기본법이 만들어진 지난 1966년 이후 일관되게 중소기업 보호정책을 펴왔지만, 중견기업만을 위한 정책은 없었다.
정부가 ‘히든챔피언’ ‘성장사다리’ 등을 강조하면서 최근 내놓았던 ‘중견기업 성장사다리 구축방안’도 더 탄력을 받게 됐다. 국회 산업위 관계자는 “제정안이 통과되면 지원절벽에 막혀 기업들이 성장을 기피하는 고질적인 피터팬 증후군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추후 관련법안들의 제·개정을 통해 정책의 실효성을 더 높이는 방안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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