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하정민특파원] 37조원의 재산 사회 환원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는 세계 2위 갑부 워렌 버핏이 부의 왕조적(dynastic) 세습과 상속세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신의 결정에 자식들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버핏은 26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쉐라튼 호텔에서 빌 게이츠와 그의 부인 멜린다 게이츠와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멜린다 게이츠를 중심으로 양 옆에 나란히 앉은 버핏과 게이츠는 자신들의 자선 활동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원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버핏은 지난주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벅셔 해서웨이 주식의 85%인 370억달러를 5개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이중 대부분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증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날 기자 회견이 갑작스레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회견장에는 세계 각국 기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버핏의 결정 이후 자식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끈질기게 캐물었다. 일부 기자는 "어떤 사람들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미친 짓이라고 평가한다"며 "자녀들이 당신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했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버핏은 "물론 내 자녀들이 나에게 잘못한 것은 있다"고 웃은 뒤 "내 자식들은 재산 처분에 관한 나의 선택을 충분히 존중하고 취지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들은 이미 행복하게 잘 살고 있고, 그들이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나를 아버지로 만난 것에 대해서도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버핏은 "내 자식들은 이 사회에서 현재 내가 차지하는 위치를 물려받을 수 없다"며 "나는 왕조적 부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버핏은 부시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상속세 폐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상속세는 매우 공평한 세금(Estate tax is a very equitable tax)"라고 답했다. 그는 "상속세 폐지 시도는 혐오스런 행위"라며 "기회 균등을 보장하고 부유층에게 특혜를 주지 않기 위해서도 상속세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버핏과 게이츠는 "부자들은 사회에 특별한 빚을 지고 있다"며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대표적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버핏은 "나의 행동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원한다"며 "자선 활동을 하고 싶지만 자기가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버핏은 자신의 기부가 벅셔 헤서웨이 주가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며 벅셔 해서웨이의 기업 정책을 바꾸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의 기부가 벅셔 해서웨이 주가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주식의 유동성 문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날 벅셔 해서웨이(BRKA) 주가는 전일대비 0.65% 하락했다.
한편 버핏은 자신의 이번 결정에 2년 전 사망한 부인 수전 버핏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버핏은 과거 자신이 죽은 후에 재산을 자선 단체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은 버핏이 재산의 대부분을 그가 아내와 함께 만든 `수전 톰슨 버핏 재단`에 기부할 것이라고 예상해 왔다.
버핏은 "수전과 나는 오래 전부터 내가 돈을 버는 능력이 더 낫고, 그녀가 돈을 쓰는 데 더 뛰어나다는 점에 대해 공감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전이 나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해 내가 숨진 뒤 그녀가 자선 사업을 관장하도록 하려 했지만 그녀가 먼저 세상을 떴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최근 빌 게이츠가 2년 후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일상적 업무에서 손을 떼고 자선 사업만에 주력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버핏의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버핏은 자선활동에 대한 빌&멜린다의 역량이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활동을 꾸준히 지켜봐 왔고, 감명을 받았다"며 "재단 운영이 매우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버핏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빌 게이츠는 "재산의 사회 환원에 대한 워렌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멜린다 게이츠는 "정말 영광스럽고 너무나 흥분된다"며 "전 세계적 질병 퇴치와 특히 교육 문제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기자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이미 세계 최대의 자선 재단인데 버핏의 대규모 기부까지 더해져 한 단체에 지나치게 많은 힘이 쏠리는 것 아니냐"며 `독점`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멜린다 게이츠는 "물론 엄청난 부담이긴 하지만 너무나 많은 돈을 가졌다는 이유로 문제를 일으킬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록펠러 재단, 마이클&수전 델 재단 등 많은 기타 자선단체와 활발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며 "오늘 아침에도 카네기 재단과 뉴욕 시 도서관 건립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설명했다.